여덟 편의 단편들이 수록된, 김애란의 소설집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고, 누군가의 배려를 받고……. 작품집의 포문을 여는 <너의 여름은 어떠니>는 이런 경험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 그 안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끔 만드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의 ‘미애’는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던 ‘준이’ 선배로부터 거의 모욕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분노와 배반감에 시달리지만, 자신이 절박했던 순간,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던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준이 선배의 절박함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런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지요.
잡식 동물인 인간이 동물성 단백질을 취하기 위해서는 ‘살육 행위’가 따라야 한다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듯이, 우리는 살아감에 있어 타인과의 관계에 부채감을 느끼는 것에 인색한 편입니다. 이 작품은 ‘관계 맺음’, 그 이전에 ‘생존’을 위한 면면의 일상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통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삶이라는 전장 위에서 피해를 주는 사람도, 피해를 입은 사람도, 사실은 그게 그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삶의 한 모습이고, 어떻게 보면 삶의 과정일 수도 있겠고요.
<벌레들>과 <물속 골리앗>은 긴장감이 넘치는 작품들로 호러 소설의 감상을 남깁니다. 작가 자신은 원하지 않았을지라도 말이죠. 두 작품 모두, 읽는 내내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벌레들>은 으스스한 분위기와 긴장감 넘치는 묘사, 호기심을 유발하는 사건 전개가 특이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도시의 삶과 그 안에 고립된 만삭의 여주인공, 신물(神物)처럼 보이는 고목(古木)과 기괴한 벌레들 같은 소재들로 작가는 인상적이고 기묘한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이끕니다.
집안에 출몰하는, 혹은 깊은 밤, 방충망을 뚫고 들어오려는 벌레들에 대한 주인공의 두려움은 거의 포비아(phobia) 수준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공포는 벌레들에게서 야기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원시적인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주인공이 살고 있는 낡은 아파트는 창밖으로 보이는 얇은 부직포 뒤의 공사 현장처럼 분명 공존하는 공간이면서도 철저히 분리된, 이질적인 공간이죠. 영계(靈界)나 이계(異界) 같은 공간일 수도 있고요.
야근으로 남편이 부재중인 집을 홀로 지키는 주인공의 하룻밤을 오싹하게 전개한 이 작품 안에서, 작가는 허물리는 저 아랫집 마당의 고목으로 상징되는 자연을 무시무시한 존재로 부각시킵니다. 그런 의도는 다른 작품, <물속의 골리앗>에서도 반복되죠.
<물속의 골리앗>의 주인공인 사춘기 소년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벌레들>의 주인공보다 더욱 직접적이고 완벽하게 고립됩니다.
이야기 안에서 거의 유일한 등장인물인 모자(母子)는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됐다가 사업이 진전되지 않아 거의 폐건물이 된 아파트의 유일한 거주민들입니다. 거의 도시 난민에 가까운 이 모자는 유별난 장마로 인한 물난리를 겪다가 와중에 엄마는 죽고 소년만 살아남지요. 물 안에 갇힌 소년은 탈출을 시도합니다. 작가는 이 작품의 많은 지면을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된 소년의 고난을 장마와 물난리, 침수 위기의 아파트에서의 탈출, 그 과정에서 소년이 겪는 환상 등을 보여주며 긴박감 넘치는 장면들로 채워나갑니다.
<벌레들>에서 나무로부터 생(生)을 부여받은 벌레들이나 <물속 골리앗>에서 물난리를 야기한 폭우는 자연의 난폭한 이면을 상징합니다. 「자연은 자연스럽지 않게 자연이고자 했다. 예상하지 말라는 듯, 예고도 준비도 설명도 말며 납작 엎드려 있으라는 듯. 네 조상들이 했던 것을 너희도 하라는 듯 난폭하게 굴었다. (물속의 골리앗, 본문 100쪽)」의 문장에서 보듯, 자연은 인간들로 하여금 복종하길 종용합니다. 자연은 원래 그런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관대하지만 너그럽지만은 않은, 씨를 뿌리고 가꾸면 열매를 돌려주듯이 받은 만큼 되갚아주는 속성의 자연. 어쩌면 작가는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인간들에게 명백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물속 골리앗>은 사람들과 건물들로 거의 폭발 직전까지 몰고 가는 작금의 도시 개발 정책, 노동자들의 권리를 짓밟는 권력집단, 시위 중의 의문사 등의 핍진적인 배경에 세기말 적인 분위기와 을씨년스러운 마을의 정경, 부모의 죽음을 경험하고 텅 빈 건물 안에 홀로 남은 소년의 외로움과 공포가 잘 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작품은 개발을 빌미로 자연 파괴를 일삼는 인간들과 건설업과 제조업에 치중하는 우리나라의 산업 정책에 대한 힐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앞의 작품들이 ‘센’ 이야기들이었다면, 이어지는 작품들은 비교적 유순합니다.
‘루저’의 삶을 살아온 ‘용대’가 조선족 아가씨 ‘명화’를 만나고 헤어지고 슬픔과 아픔을 겪다가 결국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의 이야기인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청소 노동자 ‘기옥씨’의 추석을 앞둔 하루의 일상을 묘사한 <하루의 축>, 평범한 직장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 여자의 하루를 담담하게 보여준 <큐티클>, 두 아가씨의 티격태격 여행담인 <호텔 니약 따>등이 그렇죠.
위의 작품들은 모두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은, 인물들의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일상을 물 흐르는 듯 유연하게 보여주는 진행이 인상적입니다. 적절하게 유머를 곁들여가며 인물들의 행동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의식을 꼼꼼하게 짚어내죠. 이들의 삶은 갖은 인생사들로 굴곡져있긴 하지만 그런대로 고요하고 안정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멎은 듯, 갇힌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앞으로도 계속 택시를 몰아야 할 용대나, 비행(飛行)을 꿈꾸지만 정작 본인의 삶은 땅에 천착한 기옥씨나 ‘네일 아트’라는 작은 사치조차 인생의 짐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큐티클>의 주인공이나, 애써 해외로 여행을 가지만 결국 사이가 틀어지는 ‘은지’와 ‘서연’이나, 이들 모두 어쩌면 우리 대부분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비상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 너무나 지극히 평범한, 평범하다 못해 하잘것없어 보이는 삶에 우리는 만족해야 하는 걸까요.
작가는 드러나지 않게 이런 질문을 독자들에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마주할 수 없을 때, 그럴 용기는 고사하고 의지조차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요. 작가는 명확한 답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 행간에 암시와 힌트를 숨겨 놓습니다. 다른 독자들이 무엇을 발견하든, 어쩌면 그것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있는 것들일 것입니다.
용대는 어쩌면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고, 기옥씨의 아들은 인생의 한 번뿐이었던 실수를 교훈 삼아 다시금 착한 아들로 되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고, <큐티클>의 여주인공은 직장 안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갈 수도, 그리고 은지와 서연은 결국 화해를 해서 서로에게 둘도 없는 진정한 친구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화투패는 뒤집어 봐야 아는 거고, 인생사 살아봐야 아는 거니까요. 우리가 매일같이 저지르는 크고 작은 실수나 후회들은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삶의 밑천인 거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서른>의 ‘수인’이 불행한 이유는, 그녀가 인생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인 <서른>은 무척 우울한 작품입니다. 곧 서른이 되는 수인은 그럭저럭 행복한 여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한 번의 실수, 잘못된 판단으로 말미암아 자신은 물론,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사람까지 불행의 나락에 빠뜨립니다.
이 작품은 다단계 세일즈업계의 실태와 비리를 고발하고 평균적인 삶이 주는 가식적인 안정감을 경고하는 의도로 쓰였을 수도 있겠지만, 독자로서 마음을 빼앗겼던 부분은 다름 아닌 주인공인 수인이 겪는 불행의 연속성(어쩌면 전염성일 수도)과 그것을 통해 보이는 불행의 생명력입니다.
불행은 희생자를 필요로 합니다. 불행의 덫에 걸리면 거부할 수 없는 위험한 유혹에 빠지듯 치명적이죠. 불행은 한 사람의 희생으로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괴물 같아서 연쇄적인 불행의 고리들을 엮어나갑니다.
수인이 불행한 이유는 다단계 세일즈에 빠져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이 아닌 평균적인 삶을 좇으려 해서도 아니었죠. 자신의 실수가 원인이 된 타인의 불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에 수인은 불행해집니다. 그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않으려는 이상, 수인의 불행은 머리를 자르면 그 자리에서 두 개의 머리가 나온다는 그리스 신화의 물뱀, 히드라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 작품의 모호한 결말은 더욱 안타깝습니다. 독자로서 수인이 ‘혜미’를 찾아갔기만을 바랄 뿐이죠.
다양한 개성과 분위기, 각기 그 ‘맛’이 다른 이 작품집은 다이내믹한 감상을 남깁니다. <벌레들>과 <물속 골리앗>이 풍기는 그로테스크함도 좋고, 평범한 주인공들을 내세워 이도저도 아닌 그들의 일상을 이야기에 꼭 맞는 단어와 문장들로 맞춤하게 풀어낸 다른 작품들도 좋죠.
작가로서 김애란의 가장 큰 장점은 아마도 ‘유머 감각’일 것입니다. 인물들의 감정에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디테일한 심리 묘사, 거기에 곁들여진 작가의 유머는 엉뚱한 것 같으면서도 자연스러워요. 마치 작가의 주인공들과 그들의 사연이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요. 간만에 대단히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이었어요.
이 책의 정보는 아래로...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32023151
'꽃을 읽기_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의 양식_메어리 웨스트마콧-리뷰 (0) | 2015.12.24 |
---|---|
몬터규 로즈 제임스 단편선-리뷰 (0) | 2015.12.24 |
여덟번째 방_김미월-리뷰 (0) | 2015.12.24 |
자메이카 여인숙_대프니 뒤 모리에-리뷰 (0) | 2015.12.24 |
흑백합_타지마 토시유키-리뷰 (0) | 2015.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