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젤라’라는 십대의 소녀가 자신을 성폭행한 혐의로 친부를 고발합니다. 하지만 앤젤라의 아버지인 ‘존’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범죄 사실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경찰인 ‘브루스’와 심리학자인 ‘레인스’는 ‘퇴행 최면 요법(Regression Therapy)’을 동원해 존의 기억을 더듬다가, 앤젤라 사건의 배후에 악마를 숭배하는 집단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영화를 어떤 면에서건 좋아하는 팬들에겐 어떤 유감도 없다는 말을 먼저 하겠습니다.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몹시 형편없었다는 말을 해야 하니까요.
흡인력 있는 시작과 용감할 정도로 느긋한 진행, 음산한 분위기와 배우들의 연기는 분명한 장점이지만, 거의 끝까지 물고 늘어지던 중요한 ‘패’를 이처럼 쓰레기 버리듯 내팽개친 이야기는 엔딩을 기다리며 끝까지 객석을 지킨 관객들에 대한 모욕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떼시스(Thesis)>와 <디 아더스(The Others)>의 감독이 만든 최신작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 모욕감은 실망감이 되죠.
자신의 친딸을 성폭행한 아버지의 이야기나 사탄 숭배 등의 소재는 ‘맥거핀(mcguffin)’이 될 수 없습니다. 추리소설의 ‘훈제된 청어 (red herring; mis-direction을 위한 장치)’는 더욱 아니죠. 이 영화의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작은 거짓말이 빚어낸 한 가족의 비극과 대국민 사기극의 실체였을까요, 아니면 퇴행 최면 요법의 오류를 드러내는 것이었을까요?
이 영화가 정작 하려는 이야기는 ‘인간의 무의식의 맹점’이나 ‘집단 최면’ 같은 심리적인 주제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겨우 엔딩 시퀀스에 이르러서야 자기가 노린 게 어떤 건지 언급합니다. 미디어는 이 영화에 엄청난 ‘반전’이 있다고 홍보했는데, 그것 자체가 함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모양새죠. 관객들이 뜻밖의 결말을 반전으로 오해하지 않게 했어야 했어요. 영화가 반전을 노렸다면 더욱 기획의 실수이고요.
그렇다면 ‘뜻밖의 결말’과 ‘반전의 결말’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의외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선 둘은 공통적이지만, 제 생각엔 그 둘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뜻밖의 결말’은 여태껏 진행되어 온 이야기의 흐름을 존중해줍니다. 하지만 ‘반전의 결말’은 그것을 배반하지요. 반전의 결말이 종종 욕을 먹는 이유는 그것이 ‘기상천외함’에 너무 빠져 있는 나머지 복선도 없이, 정말 ‘난데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뜻밖의 결말은 예측 가능한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잘 살피면 의외이긴 해도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의 결말에 다다른다는 거죠. 이 영화에서 필요했던 것은 반전의 결말이 아닌 ‘의외의 결말’이었던 거고요.
‘실화’를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사건 자체가 이야기가 될 수 없듯이 실화라는 것으로 영화의 실패를 핑계 댈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실제 있었던 일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엔 각색이 필수적입니다. 이 영화 역시 그 작업을 거쳤겠지만 효과적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럼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사건을 가지고 ‘인간이 얼마나 암시받기 쉬운 존재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됐을까요.
이야기가 그럴싸해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설득이 필요합니다. 설득이 효과적이려면 ‘예’가 많을수록 유리한 편이고요. 특히 이 영화의 테마처럼 난해하다면 더욱 그렇겠죠. 이 영화가 그 어려운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비슷하지만 다른 사건을 다각적으로 보여주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물론 한 사건에만 집중함으로서 생기는 드라마의 집약도는 떨어지겠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앤젤라의 사건에서 파생된 드라마가 과연 효과적이었을까요? 그런 게 있기나 했던 가요? 한 집안 사람들이 겪은 기가 막힌 일을 보여준 것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야기 속의 거짓말쟁이를 단순히 미친 걸로 타자화할지, 한 짓은 나빴지만 동정이 가는 인간적인 사람인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결국 드라마를 만드는 데에도 실패했단 말이죠.
이 영화가 노린 전문적인 (심리학적인) 테마는 사실, 한 편의 영화 안에 담기엔 약간 버겁습니다. 게다가 난해하기도 하죠. 관객들이 그 주제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야기에 충격(감동)을 받기 위해서는 좀 더 친절한 설명이 있었어야 합니다. TV미니시리즈처럼 시간이 충분하지가 않으니, 영화 안에서 적어도 두 개의 다른 사건을 (통일성을 잃지 않는 범위 안에서) 더 다루는 구성이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건이 드물긴 하겠지만 다른 예가 분명 있을 테니까요. 물론 에피소드들의 임팩트는 손상 받겠죠. 하지만 적어도 이야기 안에서 관객들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선 영화에 남은 것이라곤 소재가 된 사건의 센세이셔널리즘과 반전을 위한 반전뿐입니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Alejandro Amenábar)’는 능숙한 감독입니다. 전작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줬죠. 이 영화가 그 사람의 필모그라피에서 시행착오적인 작품이길 바랍니다.
사족.
네, 저도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팬입니다. ‘에단 호크(Ethan Hawke)’도 좋아하는 배우고, ‘엠마 왓슨(Emma Watson)’도 좋아해요. 하지만 이 영화는 영 아니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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