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_로렌 슬레이터-리뷰

달콤한 쿠키 2017. 6. 4. 08:02


최근에 우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건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슈들이 불거지고 뉴스들이 만들어졌지만, 본인에게 많은 호기심을 자아냈던 것은 위법과 불통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무능한 권력자에게 바쳐지는 맹목적인 애정과 충성, 그리고 자발적인 복종을 보이는 소수들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제가 지지하고 좋아하는 정치인에게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과연 있을까요?


본인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습니다. 먹을 때마다 혀가 조이고 위가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어 고생을 하지요.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로 빨갛게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더라도 말간 국물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은 국물요리조차도 먹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런데 현실 저 너머의 TV 화면 위에 보이는 매운 음식들에도 비슷한 반응이 오니 이상합니다. 게다가 그 음식들은 생전 먹어 보기는커녕 눈앞에서 실물로 본 적조차 없는 음식인데도 말이죠. 경험한 적이 없는 음식을 보고 저의 혀는 왜 통각(痛覺)을 느끼는 걸까요?


인터넷 뉴스를 통해 엄청난 위기에 빠졌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여자의 소식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주변엔 여자를 도와줄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로 댓글창이 들썩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요즘 사람들의 이기심과 몰인정을 통탄하는 댓글들에 저도 욕 한 마디 보태고 싶지만, ‘나라면 과연’이라는 가정에 입을 닫게 됩니다. 그건 단순히 이타심과 용기의 문제일까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가장 빈번하게 떠오르는 화제라면 아마도 ‘과거의 일’일 것입니다. ‘옛날 이거 기억나?’로 시작되는 추억담은 아주 가끔 식구들의 의견 대립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그건 아마 서로 기억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같이 경험한 일에 대해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니, 그런 일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거죠?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이라는 부제는 이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스스로도 심리학자이면서 여러 권의 저술을 갖고 있는 ‘로렌 슬레이터(Lauren Slater)’는 인간의 행동 저변의 비밀스러운 동기, 생각과 행동의 불협화음, 각성과 인지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한 실험들을 통해 마음의 껍질을 벗기고 보편성을 뒤집으며, 기대와 상식을 때려 부수고 많은 착각들을 뒤집습니다.


실험들 그 자체도 충분히 신기하고 재미있지만, 독자로서 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열 개의 심리 실험을 통해 소개되는 열 명의 심리학자들이었습니다. 작가는 실험 당사자와 그 주변 인물들, 실험 참가자, 가족, 지인들과의 인터뷰에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며, 심리학자들이 왜 그 주제에 매료됐고, 왜 그 실험에 매달렸는지, 그 실험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으로 어떤 기쁨과 좌절을 겪었는지, 그 삶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과학적인 사실과 그것이 만들어낸 사회적 파장이 뒤덮은 한 개인의 역사를 ‘쉽고 문학적인 글쓰기’로 끄집어내어 독자들 앞에 펼쳐 보임으로써 그 발견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개인적인 필요와 사회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었음을 재조명합니다.



이 책은 심리학에 문외한인 본인 같은 독자들도 접근이 용이하리만큼 쉽게 읽힙니다. 과학 뿐 아니라 문학, 철학을 아우르는 작가의 글쓰기는 무척 자유롭고 시적(詩的)입니다.‘사회심리학’과 ‘행동심리학’을 주로 다루고 있으면서 단순히 과학 지식의 나열에 그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과학적인 사실 전달과 증명과 함께 소개되는 열 명의 심리학자들의 개인적인 신념과 세상을 향한 고집, 더불어 엿보이는 그들의 굴곡진 삶에는 감동마저 느껴집니다. 감정을 과장하거나 사견을 내세우는 일 없이 있었던 사실을 그저 전달하는 것에 치중한 작가의 글쓰기는 요즘의 ‘인문’을 주제로 한 많은 저술가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심리 실험을 소개한 저서에 지나지 않은 이 책이 놀라운 것은, 작가가 놀랍도록 교묘하게 독자들을 설득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이 책엔 타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 소개된 심리 실험들은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고 사회의 불가해한 현상들을 객관적으로 보아, 결국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권하는 작가의 간접적인 제안입니다. 작가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의 진짜 목적은 바로 그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사족.


아무리 노력해도, 태극기를 오용(誤用)하고 있는 사람들의 언행은 이해하거나 설명할 길이 전혀 안 보이더라고요. 제가 배포를 좀 더 키워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