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눈앞에서 아버지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숙희’는 복수의 화신입니다. 위기에 빠진 자신을 구해주고 전문 킬러로 키워준 ‘중상’의 죽음도 숙희의 복수심에 기름을 붓습니다.
출중한 전투(?) 실력이 국정원의 눈에 띄어 비밀요원이 된 숙희는 신분을 위장한 채 비밀 작전에 투입됩니다. 그 과정에서 같은 국정원 요원인 ‘현수’와 알콩달콩 사랑에 빠지는데,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중상이 살아 있는 것도 모자라 작전의 최종 목표가 바로 그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하지만 최악은 따로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중상이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숙희는 처절한 복수를 결심합니다.
줄거리 몇 줄 적는 일이 힘이 듭니다. 이유는 이야기에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무의미합니다. 포르노그라피에서 섹스 장면을 위해 뻔하고 서툰 이야기가 어설프게 끼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 영화의 스토리는 숙희가 칼을 휘두르고 발차기를 하고 버스에 매달리게 만드는 핑계 정도로만 기능합니다.
일단 스토리가 너무 뻔합니다.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담의 플롯은 그리스 신화 이후로 꾸준히 반복되지만 <햄릿> 같은 좋은 이야기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죠. 이 영화의 문제는 플롯 자체가 아니라 그걸 풀어놓는 방법에 있습니다. 설정만 늘어놓은 이야기엔 알맹이도 없고 깊이도 없어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드라마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플롯에 숭숭 뚫린 구멍들도 인과관계 부족에 한몫합니다. 설명이 너무 부족해요. 가장 중요한 질문 두 개만 해볼게요. 애초에 음모자였던 중상은 왜 어린 숙희를 거둔 거죠? 아직 어린애라서? 너무 예뻐서? 그건 그렇다 쳐요. 그런데 나중에 비밀이 까발려지면 칼끝을 자신에게 겨눌 게 뻔한데 숙희를 킬러로 키운 이유가 뭔가요? 그리고 다른 질문. 숙희는 아버지가 살해당한 순간부터 복수심을 가졌기 때문에 킬러 교육을 받아들인 걸까요, 아니면 킬러로 키워졌기 때문에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걸까요.
구멍이 숭숭 뚫린 이야기는 관객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합니다. 관객들은 감정을 스토리 깊히 개입시키지 못하고 영화의 언저리에 머물게 되죠.
김옥빈이 연기하는 숙희는 ‘아버지의 복수’라는 미끼를 향해 달리는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살아있었다’라는 클라이맥스의 반전은 ‘깜짝쇼’ 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TV일일극에나 어울리는 현수와의 로맨스는 오골거리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좋아 연극을 한다는’ 숙희의 대사엔 콧방귀가 나오죠. 숙희는 작전을 위해 이미 신분을 세탁하지 않았던가요.
전반적으로 인물들 모두가 시나리오 위를 부유하는 유령들 같습니다. 모든 게 허술한 시나리오 탓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별로라면 눈요기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것도 많이 아쉽습니다. 보면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많은데, 스턴트 배우들을 썼다는 게 티가 납니다. CG로 지운 와이어가 눈에 보이는 것 같죠. 잘 만들어진 액션 장면이라면 관객들이 스턴트 배우들의 존재를 의식할 겨를이 없어야겠죠. 이 영화의 액션 장면들은 대부분 정교하지도 않고, 짜 맞춘 티가 나지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아기자기한 재미도 없습니다. 액션 장면들을 보다 보면 춤을 즐기지 못하는 맥 빠진 댄서들을 보는 기분이 들어요. ‘흥’이 빠진 군무(群舞)처럼 보인단 말이죠.
영화는 철저히 ‘김옥빈’이라는 배우의 네임 밸류에 매달립니다. 물론 훌륭한 배우이긴 하지만 이만큼의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의문입니다. ‘신하균’이나 ‘김서형’ 같은 배우들은 들러리 수준이죠.
숙희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건 국정원 동료 요원인 ‘김선’이나 ‘민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여자들은 너무 허무하게 죽습니다. 등장이 무의미할 정도로요. 나름 최정예 요원들만 작전에 투입되는 것 아니던가요? 나름의 혹독한 훈련과 철저한 실력 검증을 거쳤을 텐데 이렇게(별달리 하는 일도 없이) 쉬운 퇴장은 캐릭터들에 대한 예의가 부족한 탓입니다. 배우들에 대한 예의는 물론이고요.
‘여성 액션’ 운운하며 떠들어대는 미디어의 수준도 가관입니다. 우리나라에 여자 캐릭터가 발차기 하고 칼을 휘두르는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던가요? 때 아닌 ‘여성이 주도하는 액션’ 운운하는 뉴스는 이 시대 ‘성(性)차별’, 혹은 성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는 것의 반증입니다. 우습지 않나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런 성차별, 여성에 대한 편견은 여성 캐릭터를 해석한 것에도 드러납니다. 여태 냉정하고 용감무쌍했던 숙희는 사랑 앞에서 망설이고 번뇌하며 주저합니다. 김서형이 연기하는 ‘권부장’역시 지금의 냉철한 모습을 갖게 된 데엔 ‘사랑’의 실패로 인한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죠. 영화 속의 여자 캐릭터들은 왜 사랑이라는 감정을 액세서리처럼 주렁주렁 달고 있어야 하나요? 그것도 너무 치렁치렁 거려서 거치적거릴 정도로 말예요.
김옥빈이 연기하는 숙희는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담배를 꼬나문 40년대 헐리웃 느와르(Noir)나 하드보일드(Hard-boiled) 소설 속의 탐정들의 연장선 위에 있는 인물입니다. 늘 우수에 젖어 있고 괜히 무게를 잡으며 아무 일도 아닌데 성질을 부리죠. 성별만 바꿨을 뿐, 역할이나 묘사는 전혀 새로운 면이 없습니다. '여성 액션' 운운하려면 주인공이 여성이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기존 캐릭터들과의 '차별화'를 먼저 생각했어야 한다는 거죠. 게다가 그 시절의 영화나 소설 속엔 휴머니즘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이야기를 했던 거죠.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영화에 남는 것은 ‘액션 하는 김옥빈’입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칼질하는 김옥빈’, ‘발차기하는 김옥빈’, ‘달리는 버스에 매달리는 김옥빈’ 정도겠지요.
흥행 성적은 좋은 것 같고, ‘깐느’에서의 평도 좋았다고 하니 다행이긴 하지만, 궁금한 건 사실입니다. 이 영화의 어떤 점에 매료된 것인지.
사족.
세상에. 국정원이라뇨. ‘국정원’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걱정원’, 아니면 ‘댓글 부대’인데, 그곳을 배경으로 이런 (첩보) 액션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코미디 영화나, 차라리 노골적인 반공 영화라면 모를까.
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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