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기능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사실의 전달’입니다. 언론 기관 종사자들은 글보다는 말로서 이 사회, 넓게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우리가 알 필요가 있고 알아야 하는 일들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을 주업무로 하죠.
하지만 근 십 년 동안, 우리의 언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들은 사실을 호도하고 진실을 외면하여 본질을 흐트러뜨리는 것 이상으로 여론을 조작해 왔습니다. 그런 모습은 약간 과장되게 깡패에 견줄 만합니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그런 면이 두드러질 땐 그들은 거의 정치범에 가까워 보이죠. ‘최승호’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인 <공범자들>은 뒤틀리고 균형과 양심을 잃은, 오늘날의 무가치한 언론으로 전락한 TV 미디어를 다룹니다.
영화에 의하면, 지금의 방송은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한 것만으로 모자라 반대의 목소리를 내거나 자성을 촉구하는 구성원들을 겁박하고 조롱과 모욕을 일삼다가 내쫓아, 급기야는 그들의 밥줄을 끊어 놓았습니다. 이런 행위는 개인의 차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온 국민은 그들의 알 권리를 박탈당하니까요.
영화가 최종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알아야 할 사실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부지불식간에 권력에 이용되기 쉽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고, 자신도 모르게 범죄에 가담하게 되죠. 아니, 스스로가 피해자가 되는 것인데, 그조차도 알 길이 없습니다.
영화는 그 모든 실마리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MB는 자신의 정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중 미디어를 수단으로 삼습니다. 자신의 편에 서는 사람들을 우두머리로 심고 시스템을 장악한 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죠. 영화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대중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서라고 주장합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충실해 ‘팩트’ 전달에 집중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 의도는 당사자들의 비협조와 적극적인 거부로 때때로 방해받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닉하게도 그런 이유로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오히려 더욱 강력해지죠.
영화는 저들의 폭압과 행패를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데, 이 영화의 진짜 목적이 단순히 ‘고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진실을 드러내고 그것을 알리려는 일말의 노력, 그것을 위한 용기와 의지, 그리고 연대의 가치와 힘을 보여줍니다.
자리를 빼앗기고 폭언과 협박에 시달리고 단지 자신들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궁지에 몰린 이들을 움직인 건 패배한 자들의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언론인, 혹은 방송인으로서의 책임감, 국민들의 알 권리,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용기와 희망이었죠.
이 영화는 관객들의 감정을 떡 주무르듯 하는데, 결국에 가서는 여느 극영화 못지않은 감동을 줍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뉴스 읊듯이 사실 전달 화면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화면 구성이나 편집의 힘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장점은 영화가 담고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에서 비롯됩니다. 영화가 다루는 현실은 우울하고 참담하지만 그것을 벗어나려는 의지, 참된 언론과 진실한 방송에 대한 염원, 결국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에 대한 희망을 지향합니다.
이 영화를 대하는 관객들의 태도는 아마도 극명하게 나뉠 것입니다. 전 정권을 옹호하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정치 선동 영화, 내지는 쓰레기로 대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열광하고 환호하겠죠. (겉만 번지르르 한 게 아니고 속 없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보수 정권의 편에 선 사람들이 과연 이 영화를 관람할 것인지는 의문이지만요.
‘싸움에서 진 개는 물지 않는다’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석에 웅크린 개는 반격할 기회를 엿봅니다.
MBC에서 해직된 최승호는 (아주 효과적인) 기회를 찾아냈습니다. <뉴스타파>라는 독립 언론에 참여했고 그의 특기인 고발, 르포 성격의 영화를 두 편이나 만들었죠. 그의 입장에서라면 무는 것 대신 짖을 기회를 찾았던 건데, 이 영화는 효과적으로 짖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 택한 최선의 선택입니다. 무척 능숙하고 꽤 교묘하며 제대로 통쾌합니다.
이 나라의 방송이 어서 더러운 때를 벗고 제 모습을 찾기를, 거리의 언론인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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