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기_영화

유어 시스터즈 시스터_Your Sister's Sister_2011-리뷰

달콤한 쿠키 2018. 2. 20. 06:21


'잭’은 직업도 없고 작년에 동생을 잃은 일로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자신 말대로 ‘좋게 말하면 불안정하고, 나쁘게 말하면 정신적으로 불구’인 사람이죠.

그런 잭을 ‘아이리스’가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단지 걸리는 건, 아이리스가 잭의 죽은 동생, ‘톰’과 연인이었다는 사실. 하지만 톰이 죽기 전에 아이리스는 그 관계를 깨끗이 정리한 것처럼 보여요. 톰의 실연과 죽음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거죠. 


아이리스는 잭을 응원(혹은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의 소유인 별장으로 그를 보냅니다. 비어 있는 줄 알았던 그곳에서 잭은 아이리스의 언니인 ‘한나’를 만나고 술에 취해 우연히 섹스를 하게 되죠.

다음 날, 느닷없이 아이리스가 찾아오면서, 유유자적했던 별장에 긴장이 맴돕니다. 한나와 잭은 지난밤의 사건을 비밀에 부치려 하지만, 잭을 사랑한다는 아이리스의 고백에 한나는 죄책감을 느끼고 동생에게 사실을 토로합니다.




설정만 본다면 ‘막장’이라도 이런 ‘막장’이 없습니다. 극 중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톰은 잭과 형제고, 아이리스는 두 사람과 모두 감정적으로 얽혀 있는데다가 잭은 아이리스 자매와 얽혀 있죠. 형제와 자매가 그렇고 그런 사이로 얽히고설켜 있다니요.


하지만 영화는 상당히 교묘합니다. 논란의 여지를 입 다물게 할 핑계들을 마련해 놓고 또 그것들이 말이 되기 때문이죠.


일단 톰은 죽었습니다. 톰이 죽었으니, 아이리스가 잭을 사랑한대도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없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동성애자입니다. 잭과 섹스를 했어도 그와 감정적으로 빠질 일은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리스와 한나는 아빠만 같고 엄마는 다른 이복자매죠.



영화의 이런 장치들을 이해하면(받아들이면), 오두막에 모인 세 사람의 관계가 정리됩니다. 잭과 아이리스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아직 서로에게 고백을 하지는 않았고, 아이를 원하는 한나는 잭과 섹스를 했지만 그건 오직 아이를 갖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잭을 사랑하는 건 아니죠.




관객으로서 감정 이입이 가장 쉬운 인물은 아이리스였습니다. 세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이니까요. 그렇다고 한나를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한나는 잭과 섹스를 하기 전에는 그 사람이 동생과 ‘썸’을 타는 중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어요.

반면 잭을 욕하기는 쉽습니다. ‘남자는 다 저래’라는 편견을 확신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니까요. 그것도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의 언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말이죠.


비밀이 까발려지는 클라이맥스 이후에 갈등과 혼란을 수습할 사람은 잭처럼 보입니다. ‘수컷의 본능’으로 저지른 일도 그렇지만, 돈독했던 자매의 사이를 이간질한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용감하게도 잭은 처신을 잘 합니다. 책임 있는 어른의 결심을 한 거죠. 무엇보다 한나에 대한 태도는 무척 감동적입니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관계의 설정으로 시작되지만 웃기고 따뜻하지만 때론 날카롭고 긴장감 넘치는,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국내의 어떤 영화 사이트에서는 이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우겨넣고 있지만, 저는 그냥 평범한 ‘드라마’로 봤습니다.


다소 ‘과장된’ 설정으로 이렇게 공감 가는 엔딩을 이끌어낸 ‘이야기의 힘’이 놀랍습니다. 결국 설정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죠. 인물들이 모두 친근하고 스크린 위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덕에 관객들은 편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도 결국엔 공감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진짜 재미와 의미‘는 아마도 그 설정 안에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저 역시 ‘막장’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건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이해하는 정도, 아이를 포함한 평범한 가정에 대한 동성애자들의 필요와 욕구 등을 이해한다면 막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 점들을 받아들인다면, 이 영화는 ‘막장 로맨틱 코미디’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족


‘에밀리 블런트(Emily Blunt)’의 팬이라, 그의 필모그래피를 뒤지면서 찾아낸 영화입니다. 뜻밖의 수확이었어요.

앙상블 연기가 무척 좋습니다. 특히 한나와 아이리스는 진짜 자매 같은데, 스크린 밖에서도 저렇게 언니, 동생 하면서 친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