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는 조용한 마을에서 혼자 살고 있는 초로의 남자입니다. 신심(信心)이 깊어 매주 교회 예배에 빠지지 않고 어딘지 질서에 대해 강박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죠.
프레드는 어느 날, 의문의 남자 ‘테오’의 작은 속임수를 발견하고는 그 벌로 마당에 잡초를 뽑으라 합니다. 그 결과가 썩 마음에 들었던지, 프레드는 테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두 남자는 의뭉스러운 동거 생활에 접어듭니다.
테오는 약간 지능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선천적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사고의 후유증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프레드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테오의 작은 실수로 프레드는 동성애자라는 누명을 쓰게 되고, 이웃들로부터 배척을 당합니다. 두 남자의 동거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영화에서 보이는 프레드의 삶은 ‘성(聖)’과 ‘속(俗)’의 범주를 오락가락합니다. 규칙과 질서를 준수하고 교회 예배를 꼼꼼히 챙기고 집에서도 언제나 옷을 단정히 차려 입죠. 반면 가끔 술에 취하기도 하고 길에서 만난 정체도 모르는, 게다가 어딘지 지능에 이상이 있어 보이는 남자를 집에 들여놓고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납치’나 ‘유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프레드는 테오를 이용해 번 돈을 혼자 꿀꺽합니다. 이건 엄연한 착취죠.
하지만 영화는 이런 논란을 비껴갑니다. 오히려 성스러움과 속됨을 오가는 프레드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내는 죽고 아들은 가출했다는데, 이 사람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이 사람은 진짜 동성애자이고, 테오를 사랑하게 된 걸까.
이런 미끼로 관객들은 이 영화의 정체를 ‘게이 로맨스’로 착각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클라이맥스를 맞으면서 그런 기대, 혹은 착각은 여실히 배반당하게 되죠. 그리고 엄청난 감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조용하고 아기자기하면서도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파장이 대단히 큰 영화입니다. 영화엔 엄청난 사건도 없고 대단한 갈등도 없으며 드라마틱한 대립 관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서로에게 호의적인데다 심지어 심각한 파국을 몰고 올 것 같은 (프레드가 동성애자라는 오명을 쓰는)사건도 유야무야 넘어갑니다. 다소 깔끔한 진행은 아니어도 영화를 감상하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외부의 어떤 것도 영향을 줄 수 없다는 프레드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그의 삶,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려는 영화의 태도로 이해되니까요.
결국 영화는 ‘자기 치유’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과거의 실수를 용서받고 그 상처를 우연히 만난 남자로 인해 치료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프레드가 아들을 이해하고 아들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데엔 테오의 힘이 컸지만, 스스로도 많은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생면부지의 남자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고, 그의 단순함과 솔직함에 동화되고, 스스로가 동성애자가 아니면서 그와 결혼식을 치르는 엔딩은 아버지가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고 동성애자인 아들의 처지가 되어봄으로서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구하는 행동으로 보입니다. 누군가의 입장이 완벽히 되어보지 않으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도 있고, ‘If you were in my shoes’라는 영어의 관용구도 있죠.
치유의 장소 ‘마테호른’은 상징입니다.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했다는 그 장소에 다시 가고 싶어 하는 프레드의 욕구는 아내와의 사랑을 추억하면서 그 결실인 아들의 존재를 조건 없이,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욕망과 병행합니다. 테오와 함께 그곳을 오르는 프레드의 모습과 게이 클럽에서 아들과 조우하는 모습이 교차되는 엔딩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를 ‘퀴어 영화’의 장르에 넣는 것도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퀴어(queer)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가족들, 그들이 동성애자인 가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니까요. 퀴어들의 가족도 ‘소수자’들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는 가정 하에 말이죠.
사족
영화에서 ‘테오’를 연기한 ‘René van't Hof’의 외모는 어딘지 예수를 닮아 보입니다. 그의 역할도 프레드를 구원하는 거죠. 재미있는 건, 그의 외모로 연상되는 예수의 모습 역시, 미디어가 만들어낸 세속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성스러우면서도 속된 사람인 프레드와 마찬가지로요. 성(聖)과 속(俗)은 하나로 통한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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