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기_영화

스틸 라이프_Still Life_2013-리뷰

달콤한 쿠키 2018. 3. 23. 05:47


‘존’은 공무원입니다. 복지 쪽을 담당하는 것 같은데, 주된 업무는 무연고 시신이 발견되면 고인의 친족이나 지인을 찾아 장례식을 치러주는 일이죠.

혼자 조용히 살며 자신의 불평 없이 일을 하던 존은 갑자기 감원 대상 통보를 듣습니다. 예산 문제 어쩌고 하는데, 존은 고인들을 화장하는 게 아니라, (돈이 많이 드는) ‘진짜 장례식’을 치러주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사임을 앞두게 된 존은 마지막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영화 속에서 ‘죽음’이란 경건하고 신성불가침 어쩌고 하는 영역에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처리해야 할 귀찮은 일일 따름이죠. 죽음에 대한 이런 태도는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요즘의 신문 지상에 이런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하니까요. ‘독거 노인’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요. 영화의 소재는 관객들의 충분한 공감을 끌어냅니다.


죽음이란 무섭고 낯선 경험이기 이전에 외로운 일입니다. 삶의 많은 추억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등지고 떠나는 길은 험난한지는 모르겠지만 고독한 여정입니다. 이 영화 속의 고인들처럼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살지 못한’이라는 문구는 엄밀히 편견입니다. 혼자 죽어가는 사람들 중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혼자 죽어가는 것도 외롭고 슬픈데, 서로 사랑하고 열심히 살았음에도 그런 누명까지 쓴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어떤 사정인지는 차치하고서요.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서 존엄을 지닙니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 ‘존 메이’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고인을 그저 잊고 모르는 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존의 일은 간섭도 되고 오지랖도 되죠. 그런 일을 (욕을 먹는 일이 있어도) 존은 열심히 합니다. 이런 주인공에 대한 공감과 이해는 영화가 의도하는 감동에 큰 영향을 줍니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마주하는 건, 사건이 아니라 ‘존’이라는 인물입니다.




영화는 마지막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 애를 쓰는 존의 모습으로 러닝 타임의 반을 채웁니다. 나머지 절반은 존이라는 남자를 보여주는 것에 할애하죠.

덕분에 영화는 정지된 듯, 다소 지루하게 진행됩니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카메라는 존의 동선과 시선을 좇기 바쁩니다.

존의 삶 역시 죽음과 닮아 있습니다. 존은 고인 물 같은 매일매일을 묵묵히 살아냅니다. 고인들의 지인들을 찾아 나설 때만이 유일하게 생동감을 갖는 순간이죠.


이런 존이 맞는 이야기의 엔딩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존의 모든 노력과 유의미했던 그의 삶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느낌이죠. 허무하게도 보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한참이나 걸립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어요.




영화는 결말에 대단히 충격적인 아이러니를 마련해 놓습니다. 그 허무함은 어쩌면 우리 인생을 닮았는지도 모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처럼 우리는 살면서 정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지도 모릅니다. 삶은 삶,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닙니다. 삶의 빛이 꺼져갈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죽음보다 두려운 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아무 소용없는 욕심과 미련으로 그 편안해야 할 길이 엉망이 될까 봐요.


어쩌면 존이 맞는 ‘비극적인’ 엔딩이 ‘비극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극적’이라는 감상 역시 외람된, 순전히 본인의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요.

난생 처음 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결혼도 하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이었다면 해피엔딩이었겠지만, 지금의 엔딩도 나름의 ‘해피한’ 감정은 전달됩니다. 허무하지만 비참한 결말은 아닌 거죠. 존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맛보았고, 그 정점에서 눈을 감았으며, 또한 열심히 일한 나름의 보상은 주어집니다. 가시적인 결과가 아니라고 그것이 갖는 무게가 무시되어서는 안 되겠죠. 또한 그것이 반드시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감상에서, 이 영화의 소재는 ‘죽음’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그저 삶의 많은 단편들의 하나일 뿐이죠.




어둡고 암울한 이야기임에도 영화는 곳곳에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그런 태도가 무척 좋습니다. 삶은 많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삶의 아이러니가 블랙코미디나 개그의 좋은 소재가 된다는 사실만 봐도 맞는 생각 같습니다.

한참이나 지난 지금, 이 영화의 엔딩을 곱씹어보면, 허무한 엔딩이 아니라 행복하고 유쾌한 엔딩이라는 감상을 갖게 됩니다. 이조차 아이러니죠.


‘죽음으로서 모든 것을 용서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건,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은 ‘증오’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국,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그렇게 믿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