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_미치오 슈스케-리뷰

달콤한 쿠키 2017. 7. 17. 06:41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범죄의 정확한 진상은 아니지만 작품 속 인물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언급한 부분이 있으니, 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 분들은 본문을 읽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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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초등학교 4학년인 ‘미치오’는 결석한 친구 ‘S’를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합니다. 방학 과제물과 유인물 등을 전달하기 위해서죠. 하나 뿐인 자식 먹여살리기 바쁜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S는 학급에서 왕따 같은 존재입니다. 미치오는 그런 S에게 일종의 동정 같은 감정을 품고 있어요. 그 날도, 자진해서 S의 집을 방문하겠다고 나선 거죠.


그런데 방문한 S의 집에서, 미치오는 목을 매달고 죽은 S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S가 자살한 거라 생각한 미치오는 당장 학교로 달려가 담임선생님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담임선생님은 두 명의 경찰과 함께 S의 집으로 갑니다. 하지만 시체는 보이지 않고, 미치오가 본 것이 사실임을 뒷받침해줄 만한 증거만 몇 개 발견됩니다.


S의 시체는 어디로 갔을까요? 시체가 사라진 것으로 미루어 S의 죽음은 살인사건이라는 경찰의 판단은 옳은 걸까요? 그렇다면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미치오는 세 살 된 여동생 ‘미카’와 함께 범인 탐색에 나섭니다.




독특한 소설입니다. 이야기는 평범한 추리물인데, 그 전개며, 말미에 밝혀지는 결말이 특이합니다.

시작과 더불어 사건이 터지고 목격자와 주인공이 등장하면 본격적으로 의문이 나열되며 수사가 진행됩니다. 첫 번째 용의자가 나오고 그 주변을 그림자처럼 맴도는 수상한 인물도 나옵니다. 범죄 해결에 힌트를 제공하거나 수사에 협조하는 인물이 살해당하면서 퇴장하면 반전, 또 반전. 결국 드러나는 진실은 암울하고 난해한데다 철학적이기까지 합니다.


초등학생과 세 살 된 여자아이가 탐정 역으로 나온다니, 어린이용 추리소설인가 싶었지만 그건 오해였습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입에 비누가 물린 채 죽은 개와 고양이들이 나오는가 하면, 페도필리아(pedophillia; 소아성애), 환생, 주술 같은 엽기적인 소재들이 총동원되니까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은 극단으로 나뉩니다. 책이나 영화나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혼재하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은 그것들이 양극단에 있다는 게 색다릅니다. 아주 좋기도 했고, 아주 후지기도 했어요.


좋았던 점은 매우 일반적입니다. 짜임새 있는 얼개, 음산한 분위기, 주인공의 액션 같은 요소들이 이 작품을 계속 읽게 만듭니다. 특히 국면을 전환하는 반전들이 꽤 인상적인데 가짜 단서들(red herring, 혹은 mis-direction)로 독자들을 유혹하다가 단번에 그것을 뒤집는 수법이 상당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뒤통수치기는 더욱 강렬해집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상은 말 그대로 충격적이죠.


엔딩이 제공하는 충격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후지다’는 감상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며, 겨우 세 살 된 여자아이가 오빠와 어떻게 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 죽어서 거미로 환생한 S와 대화하면서 미치오는 왜 상대를 제삼자처럼 지칭하는지, 미치오의 엄마는 왜 아들에게 그렇게 대하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그러다 의심을 하게 되죠. ‘혹시… 얘, 미친 거 아냐?’


사실 이런 의문들은 미치오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들입니다. 일종의 복선이죠. 결말까지 읽어낸 독자들은 미치오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죄의식과 광기에 억눌려 있는 그의 내면에 슬픔과 동정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특히 작품 말미에 쏟아내는 미치오의 하소연은 일견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아픈 상처나 부끄러운 비밀을 감추기 위해, 그것을 잊고 숨기고 부정하기 위해 모두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습성은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옳고 그른 걸 떠나서요.


하지만 작품 전체의 구조를 볼 때, 미치오란 아이의 이야기는 작품의 주된 사건과 정확히 맞물리지 못합니다. 두 플롯의 거리가 남극과 북극 정도는 아니어도 ‘서울과 부산’ 정도는 되거든요.

미치오의 정체는, 작품 전체를 냉정하게 본다면, S의 죽음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미치오의 탐정 노릇은 이야기 전개에 필수적이기보다 오히려 그 전개를 방해하고 있는 양상이죠. 게다가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뭐뭐였더라’하는 반전은 식상합니다. 작가가 플롯을 필요 이상으로 꼬아놓았다는 비난을 완전 피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여운은 꽤 길고 강렬합니다. 이 작품을 꿰뚫고 있는 비관적인 정서,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암울함, 패배의식,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은 팽배한 분노,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죄의식, 그로 말미암은 불행, 죽었다 깨도 역전될 수 없는 권력관계 같은 설정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요소들은 문학적으로 과장되어 있지만 효과적입니다.


주인공인 미치오와 S, 그리고 의문의 노인 ‘후루세 다이조’의 연결고리는 폭력입니다. 어쩌면 그것을 향한 욕망, 광기일 수도 있겠죠. 폭력이라는 행위에 있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은 비교적 명확하지만, 폭력이 재생산되는 경우 그 관계는 역전되기도 하고, 심지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이 복잡하고 찜찜한 이야기를 통해 그 얘기를, 그 폭력의 역학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


1. 1인4역(탐정, 목격자, 피해자, 가해자)을 하고 있는 미치오를 보면, ‘세바스띠앙 자프리조(Sébastien Japrisot)’의 <신데렐라의 함정(Piège pour Cendrillon)>이란 소설이 생각납니다. 자프리조의 소설 역시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지나치게 플롯을 꼬았다는 감상을 떨칠 수가 없었죠.


2. 한 일본인 친구가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라면서 소개해 줬는데, 일본어 제목으로 알려주는 바람에 번역서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찾는데 적잖이 애를 먹었습니다.

작가인 ‘미치오 슈스케(道尾秀介)’에게 중요한 문학상을 안겨준 작품들은 따로 있지만, 그 친구에 의하면, 일본 독자들은 이 작품을 작가의 대표작으로 비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새로 알게 된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네요. 나중엔 또 모르겠지만요.


3. 작가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이 같습니다. 정확히는 성(姓)이지만. 혹시, 본인 이야기를 쓴 건 아니겠죠? 설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