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로 칠순을 맞은 ‘토미와 터펜스(Tommy & Tuppence Beresford) 부부’. 은퇴도 했고 유유자적한 노후를 위해 한적한 시골의 ‘월계수 저택’을 사들입니다. 하지만 운명이 부부를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습니다. 이사를 마치고 집을 정리하던 터펜스는 저택에 달려 함께 구매한 낡은 책들 속에서, 누군가 남겨놓은 암호를 발견합니다. “메어리 조단은 살해된 것이 아니다. 범인은 우리들 중에 있다.” 이 문장이 고발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요? 노부부는 칠십여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탐색에 나섭니다.
저자인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가 생애 마지막으로 집필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이 출판된 당시에 작가는 여든이 넘은 나이었으니, 그 나이에 장편소설, 그것도 쓰기 어려운 추리소설을 구상하고 완성해낸 것만으로 충분히 존경받고 감탄할 일이죠.
동시대 크리스티의 팬이었다면 아마도 작가의 이 마지막 작품을 읽으며 향수에 젖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타미와 터펜스는 크리스티의 작가로서의 삶과 거의 함께 했다고 할 수 있어요.
크리스티의 두 번째 작품인 <비밀결사(the Secret Adversary, 29년 작(作))>에서 타미와 터펜스는 혈기왕성한 이십대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던 탐정(혹은 모험가) 커플이 작가의 이 마지막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있는 거죠.
이듬해에 ‘에르큘 포와로(Hercule Poirot)’의 마지막 소설인 <커튼(Curtain)>이 출판되고, 작가의 사후(死後)에 '미스 마플(Miss Marple)'의 활약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잠자는 살인(Sleeping Murder)>이 출판되지만, 두 작품은 작가가 1940년대에 이미 써놓았던 작품들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별인사와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아주 객관적으로,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저 자신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광팬이라는 사실을 깡그리 잊는다면, 이 작품의 의미는 그것뿐입니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야기, 혹은 이 작품의 미스터리 자체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과거의 범죄’는 작가가 생애에 걸쳐 (특히 후기의 작품에서) 자주 사용한 테마지만 그 익숙함에도 독자들의 호기심을 낚는 데엔 모자람이 없습니다. 헌 책들을 뒤지느라 온통 먼지와 거미줄을 뒤집어 쓴 터펜스가 그 중 한 권의 책에서 암호를 발견하는 도입부는 한창 전성기 때의 작품들 못지않은 흥미를 유발하죠.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작가는 종종 포커스를 놓칩니다. 작가는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했고 앞으로의 진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종종 까먹었던 것 같아요. 대화는 반복되고 비약이 심한 이야기는 시작과 끝만 있으며, 충분히 긴장을 줄 수 있는 대목에서는 그 기회를 놓칩니다.
작
가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작가는 바로 전 해에 <코끼리는 기억한다(Elephants Can Remember)>에서 그 기량이 여전함을 보여줬었지요. 하지만 이 마지막 작품은 클라이맥스도 밋밋하고 해결은 너무 쉽습니다. 그렇게 밝혀진 사건의 진상 역시 독자의 허를 찌르는 쾌감도 모자라고요. 이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 완성도 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결국 이 작품에 남는 건 ‘토미와 터펜스’라는 반가운 인물들의 등장과 (그래도 여전한) 작가의 유머 감각, 그리고 과거의 향수가 전부입니다. 맞아요. 이 작품엔 독자들의 ‘팬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꽤 많습니다. <비밀결사>에서 꼬마로 등장했던 ‘앨버트’도 여전히 등장하고, 주인공 커플의 최고작이었던 <N 또는 M (N Or M?)>에 관해서도 심심찮게 언급됩니다. 노련한 대작가의 노년을 바라보는 동시대의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어떤 감상을 가졌을까요.
그래도 이 작품에 대해 칭찬할 여지는 충분합니다. 평생 작품을 통해 ‘악의 존재’를 고발해 온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릇된 믿음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경고합니다.
이 작품이 출판된 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작가인 크리스티 자신이 매우 보수적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에 대해 작가가 불러일으키는 경각심은 꽤 강력하며, 그것은 현재, 우리에게도 유용합니다. 우리만 해도 ‘위안부’ 와 ‘친일파’ 등의 문제와 여전히 싸우고 있으니까요.
과거사를 깔끔히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때 그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 때 그 의식’에 여전히 조종되고 있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 정도면 거의 세뇌라고 해도 무방하죠.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네오 나치(Neo-Nazi)’ 문제를 흥미진진하게 다룬 ‘아이라 레빈(Ira Levin)’의 소설,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Boys From Brazil)>을 생각나게 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작품이라니, 그 여운이 상당합니다. 아마 작품에서 오는 것보다는 ‘노작가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 부분이 더 크겠죠. 그렇긴 해도, 작가는 지금 없고, 독자인 우리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새로운 작품을 읽을 기회는 영영 없을지라도, 작가가 남긴 무수한 이야기들, 범죄와 스릴, 퍼즐과 수수께끼, 로맨스와 유머 등은 앞으로 무한한 생명력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직도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가까이 두고 읽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즐거움이고 기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로서, 사랑하는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게 대단한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애거서 크리스티야말로 지금의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모로 고마워요, 크리스티.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죠.
사족.
<Postern of Fate>라는 제목의 출처는 ‘James Elroy Flecker’의 시, <the Gates of Damascus>입니다. 플레커의 시, 전문을 보시려면 이곳으로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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