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이웃집 살인마_데이비드 버스-리뷰

달콤한 쿠키 2018. 5. 20. 21:07


‘살인’이라는 범죄가 용서 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 행동이 타인의 삶 자체를, 그야말로 송두리째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살인의 피해자는 모든 것을 박탈당합니다. ‘살인’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많은 이론들이 등장했지만, 그 어느 하나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는 데엔 실패했다고 여겨집니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의 주장대로, 이 사회에 만연한 살인은 폭력적인 미디어가 주는 나쁜 영향으로도, 과거의 어떤 경험이나 기억에서 비롯된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로도 그럴듯한 핑계는 만들어줄지언정 속 시원한 설명엔 역부족인 듯 보입니다. 그에 대해 저자는 새로운 주장 하나를 더 보탭니다. 살인은 인간의 여러 가지 본능 중의 하나이며, 모든 인간들의 마음속엔 살인 회로가 장착되어 있다는 거죠. 어떤 상황, 어떤 계기로 그 회로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입니다.

 

어쩌면 이런 주장은 순수하고 결백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부정당할지도 모릅니다. 살인이라는 범죄에 대한 혐오 때문이죠. 하지만 《잔혹(a Criminal History of Mankind)》의 저자, ‘콜린 윌슨(Colin Wilson)’도, 심리학 역사상 그 악명 높은 ‘스탠포드 교

도소 실험(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을 주도한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

o)’ 역시 자신의 저서,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에서 같은 맥락의 주장을 펼친 바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피(살인)의 역사이고, 인간은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존재이며, 동시에 선한 존재도 악한 존재도 아니라는 겁니다.

데이비드 버스는 여기에 보태, 살인은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인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분별없고 제정신이 아닌 충동적인 것이 아닌 매우 ‘전략적’인 행위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저자는 인간의 ‘살인 회로(공격성, 살인의 본능)’을 진화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설명하려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취한 전략이 진화를 통해 심리학적 메커니즘으로 인간의 뇌 속에 남아 행동, 사고, 인지 등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진회심리학은, 그 이름대로 인간의 ‘진화’ 과정에 방점을 둡니다. 그 맥락에서 현재의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공격성, 살인의 본능 역시, 과거엔 인류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결정’이었다고 보는 것이 저자의 관점입니다.

 

과거의 우리 인간의 선조들은 왜 그리 난폭했을까요. 아마도 삶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을 테지만 분명 경쟁은 더 치열했을 겁니다. 생명을 연장하고 자손을 퍼뜨리는 것이 삶의 주된 목적이었다고 가정하면, 먹을 것과 섹스의 문제는 어쩌면 인간의 삶 전체를 결정짓는 중요한 인자였을 겁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규칙과 질서 같은 가치는 인정받지 않았을 테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다반사였겠죠.

저자는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기나긴 투쟁에서 마주치게 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살인’이라는 강력한 심리적 적응을 진화시켰으며, 이러한 적응은 마음속에 심리 회로로 존재하고 있고 특수한 적응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특정한 조건하에서 작동한다(본문 60쪽)」고 말합니다. 그리고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 인간의 생존에 관한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바로 ‘번식’이었다고 강조합니다.

 

번식은 동물의 짝짓기나 교미, 인간이라면 ‘섹스’의 문제와 동일시됩니다. 성관계와 임신을 통해 자손들을 많이, 그리고 널리 퍼뜨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장애들을 ‘살인’이 해결해 주었다는 게 저자가 주장하는 바의 핵심이죠. 즉 번식은 살인의 가장 원초적인 목적이며, 「격렬한 진화 경쟁에서 살인 행위가 제공하는 이점이 무척 중요했다(본문, 64쪽)」는 겁니다. 「오랜 역사 동안 살인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선택한 배우자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을 것(본문, 64쪽)」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젠더(gender)가 아닌 섹스(sex)라는 화두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소위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대변되는 성별의 차이, 즉 ‘능동적인 남성성’과 ‘수동적인 여성성’에 수긍을 해야 합니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살인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면 남자들은 여성의 외모에 집중하고 여자들은 남성의 지위(능력과 자원)을 중요하게 여기며, 외모를 가꾸는 여자, 경제력을 추구하는 남자가 타당하다는 것을 전제로 두어야 합니다.

남성주의적이고 이성애자주의적인 세계관으로 진화심리학이 페미니스트들이나 성적소수자들에게 부정당하고 거부당하는 이유로도 보입니다. 단적인 예로 저자는, 자신의 다른 저서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 the New Science of the Mind, 웅진 지식하우스 刊)》에서 ‘동성애’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본문, 258쪽; 동성애 성향; 진화의 수수께끼).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듣고 새길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례들엔 다양한 살해 동기가 등장하지만, 결국 상당수의 살인은 짝짓기(섹스, 즉 성관계뿐만 아니라 그를 통한 번식을 목적으로 한)에 대한 강한 압력으로 촉발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상대를 죽이거나 죽이고 싶은 욕망을 느꼈으며, 성적인 통제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랑하는 상대를 죽이고, 친자 살해의 원인은 ‘번식의 문제’에, 의붓자식 살해의 핵심은 ‘성적인 경쟁자의 번식을 막는 데’에 있다고 봤습니다. 또한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폭력 성향이 쉽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에도 주목할 만한데, 그 이유는 여성들보다 남성들에게 짝짓기 게임에서의 기대되는 (성적인) 보상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살해당했을 때,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피살자의 남편이나 아내가 가장 강력한 용의자라는 추리소설의 클리셰 또한 단순한 편견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배우자 살해는 대부분 ‘격정의 범죄(Crime of Passion)’이며, 그 동기는 질투, 혹은 버림받은 것에 대한 복수라고 합니다. 이 경우에서도 폭력에 대한 남녀의 성차는 두드러집니다.

저자는 ‘지위나 명예’ 역시 강력한 살인 동기로 봤지만 넓은 맥락에서는 이 또한 ‘섹스’의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진 남성들은 여성들에 대한 성적인 접근이 원활해지며, 여성들 역시 자신의 권력을 활용해 훌륭한 자손을 가질 남성들을 유혹할 수 있습니다.

범죄 역사 상 커다란 족적(?)을 남긴 연쇄살인마들 역시 그 악명으로 일종의 지위를 얻고자 했다는 주장 역시 귀 기울일 만합니다. 이들의 살해 대상이 주로 ‘여성’들이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여성 혐오’의 문제에서 벗어나 논의해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즉 ‘지위’와 ‘짝짓기’의 문제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그들이 살인을 통해 ‘권위’와 ‘힘’(그로 인해 기대되는 성적인 선택권)을 얻고자 할 때, 여성들은 보다 수월한 표적이 될 것이고, 만약 남성을 대상으로 삼을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있어 바라던 권위와 힘을 오히려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약한 개체를 공격하는 건 야생의 세계에서 흔히 보는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죠.

 

살인 본능이 진화를 통해 우리의 인격에 깊은 각인을 남겼어도, 지금은 편견이 된 경우에 대해서도 저자는 언급합니다. 계부에 의한 의붓자식 살해가 계모에 의한 사례보다 훨씬 빈번한데도 ‘계모’라는 존재에게 향한 사회적인 비난이나, 외국인이나 타지 사람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 같은 것은 분명한 편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보다 면식범에 의한 범죄율이 훨씬 높다는 건 통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죠. 어떻게 보면 범죄에 대한 이런 편견들은 진화적 적응이 시대착오적으로 잔존해 남은 경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주장은 범죄학이나 인간의 공격성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이라면 꽤 익숙합니다. 그에 부연된다면, ‘살인자는 타자화(他者化)된 괴물이 아닌, 우리의 친구이고 이웃이며,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는 문장 정도가 따라오겠죠. 그런 점에서 《이웃집 살인마(the Murderer Next Door)》라는 이 책의 제목은 매우 적절합니다.

 

저서 곳곳에 포진된 성차별적인 사고, 남성주의적이며 여성비하적인 시선 등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의 어두운 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시간을 들일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게다가 범죄를 이해하는 노력은 이 시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기도 하지요.

「살인이 발생할 때 인간의 본성은 문제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본성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하다(본문, 356쪽)」는 저자의 인용대로, 살인을 막고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 그것들에 대해 더욱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나 외의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인 살인자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살인의 동기를 이해하고 상황을 예측하며 타인에게 잠재된 위험을 볼 수 있다면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