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 ‘윌 소여’는 과거 군대(혹은 FBI)에서 인질 구조 어쩌구 하는 특수반의 팀 리더였습니다. 뜻밖의 사고로 작전엔 실패하고 동료도 잃고 스스로는 다리 한 쪽을 잃었습니다. 얻은 게 있다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간호장교 ‘사라’와 의가사 제대 후에 단란한 가정을 이뤘다는 거죠.
쌍둥이 남매의 아빠가 된 윌은 이제 프리랜서 안전 전문가로서 ‘스카이스크래퍼’라는 이름의 홍콩 최고층 빌딩에 일자리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재수 없게도) 출근한 첫 날, 빌딩의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조직과 마주칩니다.
습관에 따라 짤막하게나마 줄거리를 적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줄거리를 몰라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보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영화의 ‘액션’을 감상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말이죠. 단순한 플롯에 ‘선과 악의 대결’이란 뻔한 갈등, 결말에 커다란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 영화에서 줄거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주인공인 윌의 액션이 보다 더 중요하죠. 줄거리는 주인공이 장기 자랑을 할 수 있는 무대 정도로만 기능합니다.
액션의 무대인 ‘스카이스크래퍼’ 빌딩은 거대한 놀이동산입니다. 그래픽으로 범벅된 빌딩 내부는 화려하고 신기하면서 뻔합니다. 영화 초반, 주인공이 보이고 무대가 소개될 때, 관객들은 건물의 각 장소에서 어떤 액션이 펼쳐질지 예상할 수 있죠. 그리고 그 예상은 크게 벗어나질 않습니다.
주인공인 윌 역시 뻔한, 동시에 시시한 주인공입니다.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갖고 있으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죠. 힘도 세고 체력도 빵빵한데다 가족을 사랑하며 악인들에겐 가차 없습니다. 육체적인 힘은 가히 초인에 가까워요.
이런 주인공에 대적하는 테러 집단의 정체 역시 시시합니다. 흉포하지만 설득력 있는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시무시한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한 동기에 움직이는 사람들이죠. 그만한 일에 그런 짓을 하다니 너무 유치합니다. 초딩들도 아니고서야 보다 손쉬운 방법이 있을 법한데요. 범죄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비해 동기는 너무 빈약합니다. 모두 핑계죠.
영화가 가장 공을 들이고 집중하는 것은 주인공의 ‘액션’입니다. 고층 빌딩의 재난 상황이나 함정에 빠진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악당들은 모두 주인공을 위한 들러리입니다. 주인공은 초인이고 의인이며 영웅이죠. 잠깐 누명을 쓰지만 그건 윌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습니다. 윌은 실패하는 법이 없고 어떤 위기 상황도 극복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그에게 무한한 믿음을 줍니다.
주인공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오히려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됩니다. 주인공이 이길 것이 뻔하니까요.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죠. 아무리 믿기 힘든 상황이 닥쳐도 결국 주인공이 해낼 테니, 영화에 긴장감이란 게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결국 영화는 지루해지고 아무리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대도 ‘겉치레’에 불과하게 되죠.
사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별다른, 특별한 시도를 하지 않는 한, 무슨 영화의 아류라던가 모방작이라는 누명을 벗기 힘듭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이 영화를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들이 적어도 아홉 편은 되니까요.
하지만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한 번 봐줄 만합니다. 거대한 체구의 주인공이 맨손으로, 거기다가 의족을 단 채 건물벽을 오르고, 위험에 빠진 가족과 빌딩을 구하는 장면들은 거의 ‘묘기’에 가깝습니다. 어떤 장면에선 그래픽이나 스턴트를 썼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연기를 배우 ‘드웨인 존슨(Dwayne Johnson)’ 스스로가 했다고 장담합니다. 용감무쌍한 윌을 눈으로 좇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죠.
생각보다 시나리오가 짜임새가 있습니다. 전혀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말이 되도록’ 최소한의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여요. ‘밑밥’이 꼼꼼한 편이죠. 그리고 윌의 가족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드는 위기 상황도 꽤 잘 짜여 있습니다. 인물들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곤란해집니다. 그런 걸 보면, 막 만든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윌의 아내, 사라를 연기한 ‘니브 캠벨(Neve Campbell)’을 스크린에서 오랜만에 봤습니다. 반가웠지만 그 역할이 《스크림(Scream)》 시리즈의 '시드니'의 연장선에 있는 캐릭터라 약간 아쉬웠습니다.
사족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아홉 편의 영화 중의 한 편이 《다이 하드(Die Hard)》였습니다. 여러 면에서 두 영화는 비슷한 점이 많아요. 하지만 악당의 동기나, 주인공이 머리를 쓴다는 점에서 《다이 하드》의 편을 들어줘야겠습니다. 윌이 ‘존 맥클레인’보다 한 수 아래인 건 분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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