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길 위의 X_기리노 나쓰오-리뷰

달콤한 쿠키 2019. 2. 6. 06:50


열일곱 살의 ‘마유’는 사업 실패로 야반도주한 부모를 둔 여고생입니다. 부모의 실패는 마유에게도 그 영향을 미쳐 평소 왕래도 없던 작은아버지 댁에 맡겨지는데, 그 집도 형편이 좋질 않습니다. 마유는 작은아버지 집에서 기본적인 의식주는 물론,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질 못합니다. 심지어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도 못 갑니다. 맡겨질 때 부모가 주었던 학비가 모자란다는 이유였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정을 붙일 곳이 없는 마유는 드디어 가출을 감행하고, 또 다른 가출 소녀인 ‘리오나’를 만납니다.

두 소녀의 여정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두 아이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기리노 나쓰오(桐野夏生)’의 최근작입니다. 복수의 여자들을 중요 인물로 내세워 그들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폭력을 그리며 사회의 문제들을 건드리려는 작가의 관심과 노력은 여전합니다. 작가는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어린 여고생들을 내세워 온몸, 혹은 맨몸으로 사회에 부딪히게 함으로서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사회에 만연한 배금주의를 고발하면서 약자들의 연대를 강조합니다.





작가의 기다리던 새 작품이라 번역되어 나오자마자 읽었습니다. 기존의 작품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건 반가웠지만 자꾸 반복되다 보니 좀 지겹습니다. 약간 실망한 작품입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그로테스크’한 감상이 약간 떨어집니다. 처참하면서도 재기발랄하고 멜로드라마 같으면서도 인간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본 듯한 우울하고 오싹한 감상도 별로 들지 않습니다. 꽤 강한 소재들을 다루면서도, 작가는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폭력의 미학을 그려내는 데엔 다소 소홀합니다. (혹은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기존의 작품들 속 주인공들에 비하면) 비교적 안전해 보입니다. 두 소녀의 가출 여정을 좇아가기만 할 뿐이어서 이야기의 진행도 밋밋합니다. 작가는 인물들의 처참한 삶이나 운명의 냉정함을 잔혹하게 파고들지도, 속 시원히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커다란 위기도 유야무야 넘어갑니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에게 닥친 불행과 위기를 보여주면서도 이야기에 긴장감이 살아나질 않습니다. 소녀들의 불행은 피상적이고 깊이가 없어 ‘진짜’ 같아 보이질 않습니다. 《그로테스크》나 《아웃》 같은 작품에서 보였던 핍진성이 많이 부족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임 소리 마마》에서처럼 충격적인 드라마를 전개하지도 않습니다.


약자들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결말도 약간 부족해 보입니다. 의미나 작가의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되지만, 여태 해온 이야기의 끝을 맺고 독자들에게 ‘아, 끝이구나’하는 아쉬움 섞인 만족감을 주는 데엔 힘이 달립니다. 뭔가 불완전하고 성급한 결말입니다. ‘열린 결말’과는 다른 의미로요.





졸작은 아니지만 평작 수준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습작’처럼 보입니다. 작가가 고집스레 천착하는 소재, 여성들에 대한 애정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비판 의식은 여전하지만, 작가에게 something new를 기대하는 독자들은 실망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