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_매슈 설리번-리뷰

달콤한 쿠키 2019. 5. 16. 04:33


‘리디아’는 자신이 일하는 서점의 이층 서가에서 자살 시체를 발견합니다. 자살한 사람은 ‘조이’라는 이름의 이십대 청년, 서점의 단골입니다. 그리고 리디아는 자살한 조이의 바지 주머니에서, 자신의 열 살 때 생일 파티 사진을 발견합니다. 단순히 친절하게 대했을 뿐, 완벽한 타인에 불과한 사람이 왜 리디아의 어릴 적 사진을 갖고 있는 걸까요.

경찰과 앰뷸런스, 그리고 기자들이 옵니다. 기이한 자살 사건이 보도되고 리디아의 얼굴이 찍힌 신문에서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연락을 합니다. 애써 외면하고 숨겨왔던 끔찍한 기억이 소환됩니다.


이십 년 전, 불과 열 살의 나이에 리디아는 끔찍한 살육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습니다. 그 사건으로 리디아의 친구 ‘캐롤’과 그 부모가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언론에서 ‘망치남’이라는 별명을 붙인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그 사건의 여파로 소원해진 아버지와는 여전히 거리가 좁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편 리디아는, 죽은 조이가 자신에게 재산을 남겼음을 알게 됩니다. 고아에 감옥을 쉴 새 없이 들락거리고 직업도 없었던 조이가 남긴 거라곤 책이 전부였는데, 페이지마다 활자를 오려내어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몹시 수상합니다. 일종의 유언일까요. 아니면 암호? 조이는 리디아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걸까요. 그리고 그 대상이 왜 하필 리디아였을까요.




도입부의 흡인력이 무척 좋습니다. 과거의 살인 사건과 현재의 기이한 상황들이 교묘히 어우러져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십 년을 사이에 둔 상황들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걸까요. 그 세월의 무게와 사건의 기이함이 멋진 미스터리를 만들어냅니다. 책을 이용한 다잉 메시지(dying message) 아이디어와 서점이란 주요 무대가 어울려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도 썩 괜찮습니다.


독자들은 두 가지 미스터리를 해결해야 합니다. ‘망치남’은 누구이며 조이가 남기는 메시지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망치남의 정체는 이야기 중반 쯤에 드러납니다. 작가는 그 정체를 숨기려고 애를 쓰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주요 인물들의 수가 적어 용의선상에 오를 인물들이 몇 되지 않는데다가 살인의 동기를 예측하기가 무척 쉽기 때문이죠.

과거에 망치를 휘두른 사람이 누굴 거라 짐작되고 나니, 이야기가 갑자기 평범해집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요한 동력 한 개가 아직 남았습니다. 바로 조이가 남긴 메시지죠.


하지만 이것도 알고 보면 약간 시시합니다. 의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슨 대단한 미스터리라도 되는 것처럼 보였던 초반에 비하면 그렇다는 거죠. 낚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비중이 너무 과장되어 있습니다. 작품에서 빠져 나와 다시 생각해 보면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의심도 들고요.


감상적인 결말에 진행될수록 용두사미 격이지만 독자들의 마음을 휘감아 단숨에, 정말로 삽시간에 읽게 만드는 힘이 좋은 책입니다. 매력적인 배경과 인물들의 다채로운 성격, 미스터리 장르의 전형성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대체로 썩 좋은 긴장을 유지하는 구성, 한눈팔지 않고 이야기를 파고드는 대단한 집중력이 돋보입니다. 미스터리 장르 안에서 소위 ‘페어플레이(fair play)’ 정신을 고수하며 적절한 곳에서 실마리를 터뜨려 국면 전환을 노리는 작가의 노련함도 칭찬할 만합니다.


황량하고 스산한 정서, 타인에 대한 연민을 호소하는 테마가 인상적입니다. 서점이라는 공간, 더불어 책이라는 소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이야기 곳곳에 묻어납니다. 일종의 위안과 안정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행위가 좋은 해결책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 외면과 자기 도피의 수단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작가가 표현하듯 매일아침 ‘일용할 문자’를 찾아나서는, 육체를 위한 삶이 아닌 정신을 위한 삶을 택한 사람들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이십 년 전의 범죄는 전형적인 가족이기주의와 가부장의 폭력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조이가 생모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이유는 조이가 ‘가정’이라는 테두리 밖의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나’와 ‘우리’가 아닌 외부의 존재는 위협적이며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조이는 생모의 가정에 균열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동시에 허락되지 않는 사랑, 받아들일 수 없는 관계에서 비롯된 아이라 그 존재조차 부정당합니다. 조이는 자신이 소속될 수 있는 가정을 원하지만 결국 거리로 내몰립니다.


조이의 불행했던 삶과 리디아가 겪은 끔찍한 비극은 그 뿌리가 같습니다. 과거의 사건은 개인적이고 어찌 보면 사소하지만, 이십 년 후 많은 사람의 인생에 영향력을 끼치는 정도는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타인의 불행 앞에서 그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 어려운 것도 아마도 비슷한 이유에서일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수를 하고 그로 인해 많은 불행이 파생되지만, 사실 우리가 겪는 불행의 대부분은 그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타인들에 대해 관대해지고 스스로 겸허해지기 이전에 자신의 결정과 행동을 바로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자기 이해를 위한 노력이 때때로 기만적이고 자기 학대의 양상을 띠며 모든 일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게 과연 훌륭한 태도인지 의문이 들지만, 적어도 ‘남 탓’만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