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기_영화

포항_2014

달콤한 쿠키 2019. 3. 8. 18:26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줄거리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연근’은 포항에서 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고 어딘가 그늘이 진 인물입니다. 일을 하는 조선소의 사장 딸이 연근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확실하진 않고, 동생, ‘연수’와 약간의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 역시 실체가 없습니다. 

이 사람이 원래 배를 만들던 사람이 아니라는 건 연근을 설득하여 다시 데려가고 싶은 여사장의 등장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연근이 원래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려주진 않지만, 영화에서 암시한 이런저런 힌트를 보면, 연근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큰 충격을 받았고, 그 때문에 모든 걸 훌훌 벗어던지고 포항으로 숨어든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연근이 최근에 배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게 드러납니다.

 

모양새가 썩 좋은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만드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야지, 하는 아이디어 정도는 있다는 걸 알겠어요. 바다에 빠져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고통, 바다를 향한 증오, 가족을 잃은 슬픔, 그런 것들을 그리고 싶었겠죠. 그런 설정은 알 만합니다. 하지만 명확한 서사가 없어요. 이야기는 흘러가는데 관객들은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죠. 그건 관객의 탓이 아닙니다. 영화가 불친절하고 서툴며 막연하고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줄거리가 있고 없고는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주인공이 자고 먹고 싸고 빈둥대는 이야기로도 좋은 영화를 충분히 뽑아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관객들이 주인공의 감정에 완전히 이입될 수 있을 때뿐입니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다이내믹한 전개 없이, 절절한 감정과 심리묘사, 섬세한 디테일만으로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죠.

 

하지만 연근의 감정은 막연합니다. 감정은 물론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호합니다. 영화는 연근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끝내 말해주지 않습니다. 인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한 형편인데, 그가 아무리 절절한 슬픔과 고통을 겪이고 삭여도 그 감정이 관객들에게 과연 와닿을 수 있을까요. 연근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감정도 모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으로 움직이는지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인물들의 행동엔 전혀 납득이 가지 않으며 배우들은 인물의 피상적인 면만 연기합니다. 디테일이 없는 상황은 '그저 연기'를 이끌어낼 뿐입니다. 시나리오 안의 ‘바로 그 사람’이 되지 못한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해지고 불필요한 데에 힘이 들어가며 괜히 과장됩니다.

 

대체로 영화가 불친절합니다. 주인공이 무슨 일을 겪었고 그 일이 그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주었으며 그 변화에 그를 둘러싼 세계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그런 큰 그림은 언제가 됐든, 영화의 시작이든 끝이든 아니면 야금야금 감질나게 흘리든 보여줘야 합니다.

구구절절 설명하란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사나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도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게 관객을 돕고 이끌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관객이 ‘따라오든 말든’ 상관 않겠다는 식입니다. 방법을 모르거나 아주 서툴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가장 단적인 예를 들어보죠. 연근의 아버지와 아들이 죽었다는 사고는 단순한 해상 사고였나요, 아니면 생업을 위해 바다로 나갔다가 당한 사고였나요. 그 사고는 해일이나 폭풍 등의 자연재해였나요, 아니면 배의 고장이나 정비 불량, 안전 수칙 위반 등으로 인한 인재였나요. 어린 아들은 할아버지를 따라 왜 같이 바다로 나간 건가요. 이런 설정들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연근의 감정을 좌우하는 중요한 조건들입니다. 그의 감정이 단순한 슬픔인지, 증오, 혹은 원망인지, 그 감정에 자신을 향한 증오가 섞여 있는지, 그 증오가 사람을 향하는지 아니면 바다를 향하는지. 하지만 영화는 그냥 막연히 ‘아버지와 아들이바다에 빠져 죽어서 슬프다’는 식으로 모든 설명을 끝내려 합니다. 

 

슬픔이란 감정에도 수많은 결이 있고 급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걸 그냥 ‘슬픔’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얼버무립니다.

 

이런 안일하고 단순한 태도는 영화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연근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감정이나 상황도 막연하고 피상적이 됩니다. 저 사람이 어떤 생각, 어떤 감정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인물들에 감정 이입이 안 돼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관객들은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지 못합니다. 이야기에 몰입을 못하고 겉을 도는 관객들의 시선은 배우들의 어눌한 연기와 어색한 연출을 향합니다. 판새가 그러니 아무리 극적인 순간이라도 관객들은 마음을 열 수가 없게 됩니다. 마음을 닫은 관객들은 영화에서 그 어떤 감동도 얻질 못합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지푸라기로 만든 허수아비(세상에, ‘더미’라니요)는, 그 언급과 등장이 좀 난데없긴 해도 꽤 훌륭한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소재 자체도 그렇지만 연근에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빛이 납니다. 하지만 그것을 활용하고 보여주는 방식을 보세요. 서툴고 촌스럽고 앞뒤가 없습니다.

 

독립영화, 혹은 저예산 영화의 한계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 이름을 널리 알리지 못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았으면서도 훌륭한 영화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상업영화와 독립(혹은 저예산) 영화의 기준은 ‘자본’입니다. 시나리오나 연출의 질이 그 기준이 아니란 말이죠. 물론 그래서는 안 되지만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다소 서툴고 불친절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영화이니까 당연히 서툴고 불친절해야 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사족 

 

연근이 말이 없다뇨. 연근은 말이 없는 게 아니고 그냥 복장 터지는 성격인 겁니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말이 없다'는 건 과묵하거나 제 말에 신중을 기하느라 말수가 적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연근은 그런 성격과는 거리가 멉니다. 감독이나 배우는 인물을 제대로 파악이나 했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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