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건 ‘넬리’라는 여자입니다. 예쁘고 능력 있는 유아원 교사에다가 펀드 매니저인 ‘리처드’란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비 신랑은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남자이고 넬리를 끔찍이 사랑하는 것 같지만 옷걸이에 걸린 웨딩드레스를 보고 깜짝 놀라는 넬리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그녀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걸 짐작합니다. 넬리의 불면증은 과거의 어떤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고 넬리는 발신자 표시가 제한된, 받으면 아무 말 않다가 툭 끊기는 정체불명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뒤를 이어 ‘버네사’가 등장합니다. 이혼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이모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알코올 문제도 좀 있는 것 같고 여태 무직이었다가 파트타임 일을 얻었지만 근무태도는 엉망입니다. 한 마디로 전남편에 대한 감정으로 질척대며 이혼의 여파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버네사를 이혼녀로 만든 전남편의 이름은 바로 ‘리처드’. 버네사는 그가 곧 재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상대 여자를 스토킹합니다. 그 일은 그 여자는 물론 자신도 괴롭히는 짓이지만 멈출 수가 없습니다.
총 3부(장)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국면으로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prompt’, 즉 소위 ‘낚시’를 잘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성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오락으로서의 독서’를 지향합니다. 배반당한 여자의 지독한 러브스토리였다가 국면 전환을 거치며 복수극으로 방향을 트는 이야기는 상당한 속도감에 긴장과 재미를 보장하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끝까지 유지합니다. 게다가 번역을 거쳤겠지만 세련된 문장과 인물을 묘사하는 디테일이 훌륭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장점은 오로지 그것뿐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각각의 장에는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 같긴 한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가장 단적인 예로 버네사라는 인물을 들어보죠. 첫 장에서 이 사람은 질투의 화신, 완벽한 루저(loser)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장에 접어들면 이 여자가 사실은 전혀 뜻밖의 동기에서 단지 그런 척했을 뿐이라는 게 밝혀지죠. 바야흐로 마지막 장에선 이 여자의 전혀 다른, 진짜 의도가 드러납니다.
설마, 그럴 리가. 어쩌면 작가가 대단히 교묘하게, 버네사의(작가의) 진짜 의도를 행간에 숨겨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의 정체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드러나고 극적인 행동의 의도가 천천히 까발려지는 구성은 아무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되기 위해서는(독자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소위 ‘밑밥’이란 게 필요합니다. 구석에 숨겨놓든 행간에 미묘하게 깔아놓든 말이죠. 그런 것들이 없다면 작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됩니다.
이 작품의 경우엔 반전도 아니고 극적인 국면 전환도 아닙니다. 고단수의 ‘뒤통수’는 더더욱 아니죠. 그냥 속임수입니다. 작가는 독자들을 기만하고 있어요. 아무리 작품의 재미를 위해서라지만 이런 식으로는 곤란합니다.
이야기 중간에 덜커덕거리더니 결말은 더욱 가관입니다. 못된 남자에게 복수하는 여자의 서사는 대체적으로 독자들에게 먹혀들지만, 덫을 놓아가며 뜻밖의 다른 인물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복수를 시도하는 주인공의 동기엔 별로 호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체 누구를 위한 복수입니까. 이기적인 복수심을 정의와 공익으로 포장하고 있는 주인공의 동기에 감동하고 응원해줄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독자가 비단 저뿐일까요?
주제 면에서 ‘B. A. 패리스(B. A. Paris)’의 《비하인드 도어(Behind Closed Doors)》와 많은 부분을 공유합니다. 여기서도 못된 남편과 위기에 빠진 아내가 등장합니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B. A. 패리스의 소설에서 ‘그레이스’는 그녀 자신이 위기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장 어떻게 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여동생 ‘밀리’의 목숨과 안전까지 위험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의 버네사는 일단 위기에서 발을 뺀 상태입니다. 자신이 무슨 ‘잔 다르크’라도 되는 양 행세할 필요가 전혀 없죠. 그것도 애꿎은 사람을 괴롭히면서까지요.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주인공이 자신이 곤란하게 만든 희생양을 그 위험에서 구해내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준다고, 대체 누가 악당인 건가요. 만의 하나, 계획이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건가요. 이런 아이러니라니요.
게다가 사건들이 너무 우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작품에서는 버네사의 바람대로 거의 모든 상황들이 안성맞춤으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의 인생은 이다지도 엉망진창이 됐을까요. 이제부터 운이 풀리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해도 너무 작위적입니다.
이 작품의 인물관계를 봐도 ‘우연의 남발’ 수준입니다. 알고 보니 거의 모든 인물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거나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연결되는, 우리 TV드라마의 인물관계도를 보는 것 같아요. 세상이 아무리 좁아도 그렇지,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
악당 역인 리처드란 남자 역시 문제가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사람이 악당으로서 애정이 가질 않는다는 거죠. 악당에게도 매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찌질한 모습 말고요. 작가는 리처드에게 어떤 과거를 붙여주고서는 독자들에게 연민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마음은 요지부동입니다. 리처드의 상처는 그냥 설정에 불과해요. 액세서리죠.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와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주인공의 대척점에 놓이는 악당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깊이 있는 인물일수록 주인공 역시 탄력을 받죠. 이 작품의 리처드가 믿음직한, 그럴싸한 악당이라면 그에 대한 버네사의 대접도 달라졌을 테고, 주인공답지 않은 행동으로 지금처럼 욕을 먹고 있지는 않겠죠.
분석하지 않고, 단순히 이야기만 좇으면 이 책을 즐기는 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작가의 기만을 단지 ‘반전’으로 여기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여자 주인공, 혹은 복수(複數)의 인물들이 악당(주로 못되고 사악한 남자)에 대적하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저 같은) 독자들에게도 분명 매력적인 읽을거리이긴 합니다. 그리고 ‘연대’라는 테마는 언제나 절 흥분시키죠. 하지만 이 작품은 너무 단순해요. 단순하다 못해 시시하죠. ‘나쁜 놈을 응징하자’는 메시지도 너무 노골적이고 식상합니다.
이런 부류의 여성 서사가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붐인가 봅니다. 아마도 ‘미투(me too) 운동’의 영향이겠지만 단순히 유행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도 작고 미약하게나마 한 몫을 차지하고 있으니, 아주 무의미한 작품은 아닌 것 같네요. 어떤 경우엔 단순할수록 더 호소력 있게 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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