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기_영화

헬_Hell_2011-리뷰

달콤한 쿠키 2020. 2. 14. 07:27


멀지 않은 미래. 태양이 미친 듯이 뜨거워지고 지구는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풀 한 포기 자라기 어렵게 되고 동물들도 죽어 나가죠. 인간이라고 별 수 없습니다. 태양광선 아래 두세 시간 노출된 피부는 타들어가고 식량도 구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사회는 붕괴되고 문명도 거추장스러워져, 인간은 다시 야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핵폭발도 아닌 자연계의 붕괴라니. 훨씬 더 두렵습니다. 핵은 인간의 노력과 국제 사회의 협력으로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반면, 자연에 대해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습니다. 환경 문제에 대해 각성을 하고, 더 늦지 않게 지금의 지구 환경이라도 지키는 데 힘을 쏟을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거스르는 존재입니다. 영화는 자연의 횡포를 보여줬다기보다 자연의 으레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연은 원인과 결과가 분명합니다. 받은 대로 돌려줍니다. 영화 속의 모습은 제법 있을 법한 상상이어서 더욱 무섭습니다.

 

이야기는 그 설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살아남은 인간들이 과연 어떻게 생존할 것이냐의 화두를 던집니다. 물이나 식량. 모두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문명이 부재했던 때에도 인간은 먹고 마시기는 했었으니까요.

이야기 안에서 물은 귀하긴 해도 어떻게든 구해집니다. 더 큰 문제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입니다. 잡식 동물인 인간은 생체를 유지할 에너지를 다른 생명체에 의존합니다. 입에 넣을 풀뿌리 한 포기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간들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거의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는 인물들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어렵사리 살아남은 그들은 그들끼리 연대하며 물과 식량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다 인간을 사냥하는 다른 무리의 습격을 받으며 영화의 장르와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그런데 의외로 중반 이후의 고문 스릴러의 모양새가 잘 어울립니다. 영화는 결국 살아남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영화 속, 대립하는 두 집단은 선택의 딜레마에 빠졌을 뿐, 선과 악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법이나 도덕은 무의미해진지 오래이고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인데, 이게 나쁜 짓인지 옳은 짓인지 판단할 겨를도, 판단할 주체나 기준도 없습니다. 단지 그건 무엇, 그리고 어떻게먹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입니다.

 

인류 학자인 마빈 해리스에 의하면 태곳적 인간들의 식인 풍습은 매우 흔한 일이었고 그 이유도 다양했습니다. 주인공의 무리는 아직 그 선택을 하기 전이고 그들과 대립하는 무리들은 무엇을 먹을지 이미 결정한 후라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결정이 쉬웠다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습니다. 주인공들 역시 언젠가는 같은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자연이 주인공들에게 갑작스레 친절을 베풀 턱이 없으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클라이맥스 이후의 장면들은 다소 거슬립니다. ‘사냥꾼들을 마치 악인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죠. 자연을 배제한, 선택에 따른 인간들의 대립은 이 영화의 당연한 갈등 구조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도덕적 잣대나 문화적 기준을 들이대는 건 무의미하고 섣부르며 위험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육식의 위해나 동물성 단백질의 불필요함을 주장하는 게 영화의 진짜 목적이었다면 모르겠지만요.

 

사족

영화가 제시한 근미래2016년입니다. 2011년 작인 영화에서 고작 5년 후에 이런 악몽을 상상했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2019년이니, 이런 끔찍한 일을 우린 용케 피한 걸까요?

글쎄요.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지 않을까요. 하지만 아직우리에게 시간이 있다는 건 무척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남은 시간 동안 우리 인류가 지구를 위해 의미 있는 무언가를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