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블린’은 열 명의 자녀들을 둔 주부입니다. 살림은 늘 쪼들리고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죠. 그녀가 가난한 건 아이들이 많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남편, ‘켈리’의 책임이 큽니다. 알코올 의존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일해서 버는 돈을 거의 모두 술값으로 탕진하니까요. 무엇보다 나쁜 건 그가 느닷없이 폭력적으로 돌변한다는 겁니다. 그 폭력이 식구들에게 향하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인데, 에블린이 그런 남편을 참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마추어 가수였던 남편은 차사고로 목을 다쳐 노래를 더 이상 부를 수 없게 됐거든요. 꺾어진 꿈을 뒤로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블루칼라 계급으로 살아야 하는 남편의 좌절을 에블린은 진심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에블린은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좋은 면만 보려고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죠. 그런데 그녀의 진짜 장점은 따로 있습니다. 결혼 전에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에블린은 글, 특히 운문에 특별한 재능을 보입니다. 그녀는 요즘도 가끔 볼 수 있는, 기업에서 자사의 제품들을 홍보하기 위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여는 (노랫말이나 광고 카피 같은) 글짓기 콘테스트 행사에서 일등을 거의 놓치지 않습니다. 상금이나 상품도 가끔 어마어마해서 에블린은 집주인에게 쫓겨날 위기에 처한 가족을 구해내기까지 합니다.
영화는 그런 에블린의 활약에 집중합니다. 거의 에블린의 원맨쇼에 가까워요. 카메라의 시선은 늘 에블린을 향해 있고 영화의 모든 사건들은 에블린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에블린이 주인공이니 당연할 수도 있지만 ‘균형’의 측면에서라면 다른 캐릭터들은 거의 소외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특히 남편 ‘켈리’는 ‘이유 있는’ 질투와 열등감, 패배감과 좌절로 시달리지만 영화는 그의 어깨를 단 한 번도 다독여주지 않습니다. 에블린이 신격화되고 있는 동안 켈리는 ‘찌질한 쫌팽이’ 신세를 단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하죠.
그런 데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의 목적이 너무나 분명하니까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의도는 50년대 미국에서 여성들이 받았던 푸대접을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가부장이 판을 치는 시대에 훌륭한 재능을 지녔지만 ‘가정’에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던 한 여성이 우연찮게 그것을 발휘할 기회를 찾고 꿈도 펼치고 돈도 벌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이야기 말예요. 관객들이 그런 에블린의 모습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해보는 건 덤이 아니라 더 중요한 목적일 수 있습니다. 과연 관객들의 판단은 어떨까요. 저런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까요, 아니면 저 때나 지금이나 오십 보 백 보라고 여길까요.
에블린은 사회문화적으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핍박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그런 여전사는 아닙니다. 텅 빈 냉장고와 쌓여가는 청구서가 가장 큰 걱정이라 다른 데 눈 돌릴 새도 없었죠. 에블린이 콘테스트에 매달린 이유도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일에서 나오는 돈은 정말로 그녀의 가족들을 구원하고 먹여 살립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어쩌면 최선은 아니었을 겁니다. 형편이 좀 더 나았더라면, 삶과 돈에 쫓기지만 않았더라면, 에블린은 시를 짓거나 책을 쓰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오히려, 에블린의 행동이 현실적인 삶에 천착되어 있기에 그 이야기는 설득력을 얻고 감동을 줍니다. 관객들은 에블린의 삶에 집중하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죠. 관객들은 에블린의 승리에 박수를 치면서도 그녀의 삶에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이 영화의 여성주의적인 성격은 구석구석에 숨어 있기는 하지만 에블린 본인이 아닌, (딸 ‘터프'로 대변되는)그녀의 후대부터 적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영화입니다. ‘에블린 라이언(Evelyn Ryan)’은 실존 인물이고 그녀의 딸 ‘터프’가 어머니를 회고하며 쓴 글을 토대로 여성 감독이 만들었죠. 무엇보다 캐스팅이 좋습니다. 에블린이 어떤 여자였는지 알 턱이 없는 우리는 ‘줄리앤 무어(Julianne Moore)’라는 배우가 얼마나 에블린에 가까운 모습을 재현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배우는 에블린의 개인적 고뇌, 희망, 욕망, 희생과 분별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에블린의 파편화된 삶이면서, 드라마의 좋은 재료이기도 합니다.
일방적인 서사에도 불구하고 좋은 영화입니다. 특히 전후 냉전시대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역설하는 듯한 발랄하고 가벼운 톤(tone)과 절제된 유머가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를 단지 모성이 승리하는 드라마로 볼 수도 있고 ‘남녀차별 반대’라는 슬로건을 교묘하게 외치고 있는 여성 영화로 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본래 의도는 아마도 좀 더 전투적이었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오늘의 여성 관객들이 반 세기 전에 존재했던 한 여성의 삶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정작 에블린이 싸운 상대는 ‘남자’나 ‘사회’가 아닌, ‘가난’이었다고 외치는 남자들에게 여성들을 가난으로 몬 사회는 누가 주물러 왔는지 따진다면 반응이 어떨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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