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테레사의 오리무중_박지영

달콤한 쿠키 2024. 8. 20. 02:51

 

단편 세 편과 에세이 한 편이 실렸다.

에세이가 특히 좋았는데, 작가 박지영이기 이전에 인간 박지영의 솔직한 모습에 꽤 매료되었던 것 같다.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고충이랄까, 작가로 살면서 생활인으로서의 삶도 놓치지 않으려는(않아야 되는) 치열함, 두 영역의 충돌에서 오는 개인적 갈등, 거기서 유발되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지 등이 귀감이 됐다. 소설 작품 세 편의 화자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도 평범한 인간으로서 부지런하게 사는 작가의 모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표제작인 <테레사의 오리무중>자아 찾기를 주된 모티프로 쓰였는데, 작가는 지금의 나는 내가 바라는 나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라는 다소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변화무쌍한 현재를 거부하고 참된 이데아를 추구하는 플라톤 철학과 맞닿아 있으면서, 아수라장 같은 분주함, 현실적인 배경에 과장된 동화 같은 사건들, 어수선한 분위기, 읽고 있으면 독자가 정신 분열을 일으킬 것 같은 혼란스러움이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개인적인 고민이 많이 드러난, 글은 쓰고 싶고 써야 하고 계속 쓸 테지만 그것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으니 돈벌이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하는, 이 땅 위의 가난한 작가들을 위한, 동시에 작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비가(悲歌)로 읽힌다.

 

<올드 레이디 버드>은 임시직과 정규직의 두 인물을 내세워, 외집단(outer group)과 내집단(inner group)사이의 권력 충돌, 소속감과 권력 의식,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지배욕구와 통제욕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의 이러한 주제의식은 결국 자아와 관련된 욕구로 바로 위의 작품 <테레사의 오리무중>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작품은 보다 외부로 향하는 자아, 권력을 획득하고 그것을 타인들에게 행사하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표면적으로는 이 작품이 짝사랑으로 끝나고 만, 실패한 연애담으로 읽히는 것도 재미있다.

 

공정한 죽음 비용(164)’을 화두로 개인의 존엄, 죽음에 대한 예의 등을 이야기한 <장례 세일>은 무거운 소재를 영리하고 재치 있게 풀어낸 입담은 좋았으나, 작가 자신이 너무 많이 개입되어 설명하고 가르치는 느낌이 감상을 다소 깎는다.

 

세 작품 공통으로 작가는 공정함’, 내지는 공평함을 자주 언급하는데, 이는 곧 삶의 밸런스에 대한 질문 같다. 현실과 이상의 균형, 지금의 나와 내가 바라는 나의 균형,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균형, 삶과 죽음의 균형, 성공과 실패의 균형, 기타 등등. 삶의 저울이 완벽한 수평을 이루기는 어렵겠지만 스스로 납득하는 중간의 어느 지점, 집착과 내려놓음의 중간 어딘가를 찾으라는 작가의 주문이 아닐까.

 

(내 경우엔) 첫인상과는 달리, 두 번째 읽을 때에야 작품들의 진가가 더 잘 드러났다. 조금 더 선명해졌달까. 평범하지 않은 목소리, 한국 소설 시장에서 흔하지 않은 주제의식, 비범한 질문을 대범하게 던지는 작가의 스타일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용기와 패기가 인상적이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자신에게 충실함과 성실함에서 더 큰 가치를 찾는 작가가 보이는 듯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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