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히든 픽처스_제이슨 르쿨락

달콤한 쿠키 2024. 8. 23. 15:46

 

20대 초반의 맬러리는 마약 중독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중독 문제는 약간 억울한 부분이 있는데, 외과 치료의 일환으로 복용하기 시작한 마약 성분의 약이 원인이었다. 육체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게 된 것. 의사는 그녀에게 경고를 하지 않았다.

끈질긴 노력으로 약물에서 거의 자유로워졌을 무렵, 새출발의 의미로 맬러리는 직업을 추천받는다. 5세 남자아이, ‘테디의 보모가 바로 그것.

도시 근교의 으리으리한 저택. 고용주 부부는 친절한 인텔리들이고 아이는 귀엽다. 그곳의 별채에 머물며 일에 적응하던 맬러리는 테디가 그리는 그림에 어떤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고 그 비밀을 파헤치려 든다.

 

아이가 그리는 의미심장한 그림, 아이가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놀이 친구, 외딴 집, 어린 보모, 빙의.

호러나 스릴러 장르에 숱하게 나오는 진부한 클리셰들투성이다. 비슷한 소설, 영화들이 많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여러 버전으로 영화화 된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소설,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

 

소설의 초반을 읽으면 하품이 나오기 시작한다. 또 시작이네. 이런 거 그만 쓸 수 없나. 하나 같이 다 똑같잖아. 이런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

초반을 벗어나면 이 작품만의 개성이 뿜어져 나온다. 주인 부부는 음흉한 사람들이 아니고 어린 보모도 나약한 여자가 아니다. 이 사람은 전직 육상 선수였다.

중반을 거치면서 여러 차원의 국면이 새로 등장한다. 어둠이라곤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주인 부부는 어딘가 이상하고, 보모도 믿음직스럽지 못 하다. 이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가만. 이 사람 마약 문제가 있었잖아. 약 끊은 거 맞아?

 

호러와 미스터리의 배합이 기가 막히다. 전체적인 설정과 분위기는 초현실성에 의존하면서도 내부의 사건들, 인물들의 드라마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단서, 복선, 그것의 회수, 모두 절묘하다.

호러와 미스터리는 서로 이질적인 장르다. 비슷해 보이지만 독자들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느냐가 확연히 다르다. 여러 작가가 많은 작품 속에서 호러와 미스터리의 배합을 시도했지만 무릎을 칠 정도로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이 작품이 눈에 띄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작가는 무척 잘 해낸다. 자세히 본다면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를 작가는 정말로 맛있게푼다. 능란하다.

 

여러 장르의 혼종이지만 이 작품의 색깔을 결정짓는 건 미스터리’, 혹은 추리소설로서의 특징들이다.

수수께끼를 던지는 법, 단서를 제시하면서도 볼 수 없게 만드는 법은 추리소설의 작법에서 유효하고 독자들의 마음을 졸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뒤통수를 치는 건 스릴러 작가들이 많이 쓰는 작법이다. 주인공 주위로 음산하고 초현실적인 사건을 배치하고 동기를 주는 건 호러 장르의 기본 아이템이고. 주인공 맬러리의 로맨스는 덤이다.

 

별 기대도 안 했다. 급하게 나오느라 책장에 꽂힌 책, 정말로 아무거나 가방에 넣었는데, 그야말로 대박. 완전 취향 저격이었다. 누구 말대로 쾌락을 위한 독서라면 바로 이런 책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