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70년대 헝가리. 제목인 ‘장미 박람회’는 헝가리 국영 방송국의 PD, ‘코롬 아론’의 연출 데뷔작으로, 원래는 ‘우리들은 죽는다’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죽음’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의도인 즉, 죽어가는, 혹은 더 이상 치료가 의미없거나 불가능한 환자들을 섭외하여 생생한 죽음의 현장을 보여주자는 것.
대단히 불온하고 엽기적이며 선정적인 취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꽤 철학적인 감흥을 줄 수 있는 좋은 기획일 수도 있다. 모두 만들기 나름. 생각해 보면 우리 공중파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같다. 직장인들의 ‘3일’을 화면에 담는 기획 중 한 편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주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엔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이 조연이었던 반면, 이 소설 속의 프로그램에선 바로 그들이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코롬 아론의 기획안으로 시작하여, 섭외와 방송 제작 과정, 각 인물들의 이야기로 진행되다가 완성된 방송물에 대한 신문 비평글로 마무리된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작가가 마주보려 한 대상은 바로 ‘삶’이다. 매일을 바쁘게 사는 우리는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힘들다.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에야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다.
소설 속 인물들이 죽음을 선고받은 후에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건 (의외로) ‘자신의 주변’이다. 방송을 위해 섭외한 인물들을 지식인(학술연구자), 노동자, (방송)예술인으로 설정한 건 다양한 계층의 삶의 양상을 조망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언어 연구자인 ‘더르바시’는 자신의 저술을 끝마칠 수 없을까 걱정하고, 화훼장식 노동자인 ‘미코 부인’은 홀로 남게 될 노모를 걱정하며, 죽기 직전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방송계 유명 인사인 ‘J. 너지’는 자신의 죽음 후에 남게 될 사람들에게 많은 농담거리를 제공한다. 인간이 진정한 의미에서 ‘이기(利己)’의 허울을 벗고 비로소 관대해질 수 있는 순간은 오로지 죽음 앞에 이르렀을 때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이 주는 대표적인 감상은 ‘웃프다’. ‘죽음’을 소재로 죽어가는 인물들을 내세웠지만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유쾌함이 매력적이다. 한편으로 작품에서 가장 비중이 큰 ‘미코 부인’의 이야기에선 죽음을 앞둔 사람의 안타까움과 삶에 대한 회한을 엿볼 수 있어 슬프다.
작가는 죽음이란 별개의 사건이 아닌, 삶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세상에 태어난 인간에게 언젠가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며, 탄생 이후로 인간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죽음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무섭고 두려운 최악의 사건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가 맞이할 인생의 색다른 이벤트쯤으로 여겨진다.
나의 죽음을 잠깐이나마 상상하게 된다. 후회와 걱정이 많을까. 두려움이 더 클까. 아니면 고통스러울까. 하루하루를 살며 먼훗날(얼마나 멀지 누가 알겠는가) 내게 닥칠 이 특별한 이벤트를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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