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커다란 모자이크 화(畵) 같다. 영화로 말하자면 몽타주(montage)로만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몇 명의 중심인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다. 주변에 많은 인물들이 등퇴장을 반복한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하는데 그걸로 서사화 시키지 않는다. 단발성 에피소드로 끝나는가 싶지만 그건 또 아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모여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든다. 지류들이 모여 강을 이루는 식이다. 그래서 줄거리를 소개하는 게 쉽지 않다.
일반의 소설 독자들에게 익숙한 소설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한 명, 혹은 다수의 주인공이 나와 그, 혹은 그들이 겪는 문제를 제시하고 사건을 진행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결말을 맺는, 그런 소설의 모양새에 편안함과 재미를 느끼는 나 같은 독자에겐 다소 괴상하고 어렵고 지루해 보인다.
물론 기-승-전-결, 혹은 시작-중간-끝이라는 구조가 보이기는 하다. 독재 치하의 정치적 혼란과 위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것이 무너지고 공포가 일단락되면서 끝을 맺는다. 그 끝이 진정한 끝인지, 아니면 새로운 혼란과 공포를 위한 휴지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의 문장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사실적인 설명과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문장을 남발한다. 전위적이다. 작품 전체가 시 같다.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같기도 하다. 작품이 주는 이미지는 다다이즘(dadaism),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 같다. 화가들이 참혹한 현실에 고개를 돌리고 무의식과 꿈을 화폭에 그려낸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 역시 현실을 뒤틀고 환상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묘사함으로서 부조리와 공포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작가는 루마니아 계로 독일의 소수민족 출신이다. 독일의 패전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그들이 겪었을 폭압이 끝나는가 싶지만, 새로이 들어선 독재 정권으로 고난은 이어진다. 이런 역사가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 자국과 민족의 역사에 천착해 현실을 고발하고 비판한 작품들을 주로 써온 작가는 2009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내가 읽은 작가의 첫 작품이고 읽는 데 어려움은 있었지만 ‘학을 뗄’ 정도는 아니었으니, 다른 작품을 읽으라면 당장 내키지는 않겠지만, 몇 개월 후쯤엔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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