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아일린_오테사 모시페그-리뷰

달콤한 쿠키 2025. 6. 8. 02:15

 

주인공 아일린은 잘 만들어진 캐릭터다. 소설 작법 책의 캐릭터 챕터에서 다룰 만한 인물이다.

동정도 가고 연민도 간다. 동시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어떤 부분에선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그녀가 살아온 인생이나 당장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빨리 벗어나라고, 혹은 당장 그만두고 네 인생을 살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이 작품은 캐릭터 소설이면서 (약간 다른 의미의) 성장 소설로 읽힌다.

 

아일린은 시한폭탄 같은 인물이다. 이 소설이 갖는 재미와 매력의 80퍼센트는 모두 이 인물에게서 비롯된다. 작가는 아일린이란 인물을 도구로 독자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데, 이 인물을 무척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인물에게서 비롯된 긴장은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의 반이 지나도록 작품의 긴장은 유지된다. 중반을 지나며 매력적인 리베카란 인물이 등장하고 아일린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보이는 게 다일 것 같지 않은 리베카는 어느새 아일린의 일상에 빠질 수 없는 존재로 부각하고 이야기 저변에 흐르던 서스펜스가 서서히 증폭된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 거다. 그러다 거의 막바지에 어떤 사건이 빵! 터지는데 그 충격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진다.

 

리베카의 무분별한 행동은 충격적이나 딱히 마땅한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래야 했을까. 별다른 이유 없이 작가는 중요한 패를 리베카에게 넘김으로써 아일린을 한낱 꼭두각시 조연으로 추락시킨다. 이어지는 결말은 맥이 빠진다. 가능한 결말 같지도 않고 다소 억지스럽다.

 

아일린이 이런 인물이었나 의심이 든다. 리베카의 영향력 아래에서도 아일린은 주체적인 인물이었다. 아일린이 맞는 결말은 그 자체로서는 괜찮다. 하지만 그런 결말에 이르게 되는 과정엔 동의할 수 없다. 아일린은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을 지킬 능력이 있는 인물이어 왔다.

 

클라이맥스가 좀 과하단 생각이 든다. 아일린은 어쨌든 추락할 운명이었다. 그 과정을 유려하게 그리며 인간이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리베카가 주도한 사건이 지나치게 튄다. 대상보다 배경이 두드러지는 그림 같다. 배경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니 정작 그림의 주인공은 배경에 스며들고 만다. 이는 구조의 문제처럼 보인다. 강약 조절에 실패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독특한 인물을 창조하고 성격을 서서히 드러내며 오직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긴장을 부여하는 솜씨가 남다르다.

그리고 작품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 하나. 삶이 올바른, 적어도 바라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인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