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크게 세 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장면.
현대의 이란. 히잡 착용을 거부한 젊은 여성이 경찰에 끌려가고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공권력의 폭력에 의한 죽임을 의심한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그 불씨가 ‘이만’ 가족에게 튄다. 집안의 큰 딸인 ‘에즈완’은 기숙사에 급습한 경찰들에 의해 폭행을 당한 친구를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아이들의 엄마인 ‘나즈메’는 국가 고위 공무직인 남편의 눈을 피해 치료를 돕지만 시위 가담자일지도 모르는 아이를 집안에 두는 건 위험하다. 억지로 기숙사에 돌려보내고 그 아이가 사라지고 만다.
두 번째 장면.
이만의 권총이 집안에서 사라진다. 총을 분실한 건 이만에게 위험천만한 일이다. 노리던 승진은 고사하고 정부로부터 큰 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총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이만은 아내와 두 딸들을 의심하고 식구들은 이만의 부주의함을 의심한다. 와중에 ‘수사 판사’인 이만이 시위 가담자들의 재판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드러나고 그의 신상이 공개되어 가족들은 성난 민중의 표적이 된다.
세 번째 장면.
위기에 빠진 이만 가족이 시골로 도피한다. 도시와는 외떨어진 그곳에 은신한 가족은 분열한다. 이만은 권총의 행방에 집요하게 매달리며 점점 미쳐간다. 가족들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큰딸과 아내를 감금한다. 결국 가장과 대립하게 된 나머지 가족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현재의 이란을 국제 사회에 고발하고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 두드러진다. 굉장히 정치적이고 의도가 노골적이다. 감독과 출연 배우들이 출국 금지를 당하고 고초를 겪은 건, 이란 정부 당국 입장에선 꽤 당연해 보인다.
생살을 드러낸 듯 충격적인 초반에 비하면 후반으로 가면서 색(色)을 달리 한다. 에둘러가거나 덧씌우지 않고 ‘직진’하기를 선택했던 초반이 정치 스릴러의 옷을 입고 있다면, 권총이라는 맥거핀이 대두되는 히치코크 식 스릴러를 지나, 시골에 은신한 가족들에게 온 카메라가 집중되면서 도메스틱 호러의 외피를 쓴다. 연기나 설정들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 생각나는 화면들이 많다.
초반의 직접적인 묘사는 후반부에 가까워지면서 상징과 은유로 바뀐다. 미친 이만은 국가(가부장) 폭력의 상징이다. 그 아래, 가족(국민)은 살아남아야 한다. 모르는 척하거나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거나. 나즈메와 두 딸은 가장에 맞서 싸운다.
감독의 의도와 국제무대에서 이 영화가 이끌어낸 성과는 별도로, 모양새가 그렇게 매끄럽지는 않다. 영화 전체의 일관적인 톤(tone)이 아쉽다. 특히 권총이라는 소재를 둘러싼 인물들의 동기와 행동이 석연치 않아 영화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된다.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달리는 이유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폭압이 만연하고 가부장이 득세하고 종교와 정치권력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지금의 이란을 고발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게 전달된다.
제목의 ‘신성한 나무’는 현재의 이란 사회에 대한 조롱으로 여겨진다. 다른 나무의 성체에 씨를 내리고 기생해 결국 숙주를 죽이고 살아남는,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거꾸로 성장하는 ‘인도 보리수’의 기괴함은 신성함과는 거리가 먼, 폭력 그 자체다.
사족.
제목의 ‘Sacred Fig’는 인도 보리수로서, 불교의 삼대 성수(聖樹) 중 하나인 보리수(Peepal Tree)와는 다르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2022년의 ‘히잡 시위’가 궁금하다면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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