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집을 떠나 친구인 스텔라에게 얹혀살기로 한 스무 살 제인은 자신의 방을 꾸미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나선 곳이 한 동네의 벼룩시장(Yard Sale). 그 곳에서 제인은 세이디란 노부인으로부터 꽃병으로 쓸 양으로 커다란 보온병을 구입합니다. 하지만 그 보온병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무려 몇 천 달러나 되는 돈이 안에 있었던 거지요. 뜻밖의 돈에 당황한 제인은 세이디의 주변을 어슬렁거리지만 노부인은 그 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아요. 제인에게 그 돈은 횡재일까요? 그 반대로 제인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Grumpy Old 세대와 젊은 세대가 만나 처음엔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엔 세대의 벽과 가치관을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키우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많습니다만 이 영화가 그런 영화들과 다른 것은 그 보다 더 보편적인 주제, ‘신뢰’와 ‘용서’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돈을 발견한 후의 제인의 태도와 행동입니다. 제인은 뜻밖의 횡재를 만난 사람, 딱 그만큼 행동해요. 쇼핑도 하고, 갖고 싶었던 물건도 사고. 하지만 그런 재미는 오래 가지 않습니다. 제인은 평균 이상의 양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거죠.
하지만 그 양심은 그 이상 제인을 다그치지 않습니다. 세이디의 눈치를 보며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제인은 노부인에게 친절을 베풀기 시작하죠. 하지만 그런 행동이 돈의 대가로 보이지는 않아요. 친절과 봉사, 사랑을 천성적으로 타고난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런 행동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여기며 무척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죠. 제인에겐 채무감은 존재하지 않아요. 제인이 비양심적인 여자라서가 아니라 천성대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기 때문이에요. 영화 속의 제인은 가장 이상적인 ‘자유인’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제인의 태도도 그렇고요.
제인이 발견한 돈은 영화 내내 일정한 긴장감을 제공합니다. 돈에 관한 사실이 발각되면 어쩌나, 두 사람의 보기 좋은 인연이 깨지면 어떡하나, 하는 관객으로서의 감정이입도 무척 쉽죠. 인물들도 무척 잘 그려졌고, 모든 캐릭터들에겐 자신만의 역할이 있으며,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영화의 엔딩을 처리한 방법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죽은 남편의 무덤에 꽃을 놓으러 제인을 대신 보내는 세이디의 행동은 아주 함축적이죠. 아무것도 모르는 제인이 세이디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는 의문이지만요.
심각한 영화도 아니고 무거운 주제를 강요하는 영화도 아니며, 그저 4월의 어느 봄날, 나른한 햇볕 아래 편안히 누워 일광욕을 즐기며 주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같은 영화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두 여자의 파리 여행이 진심으로 행복했길 바라는 마음이 들죠.
사족. 배우들에 대해서.
꼬장꼬장한 할마씨에서 인간미 넘치는 노부인으로의 좋은 연기를 보여준 세이디 역의 Besedka Johnson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자 유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촬영을 마친 후에 영면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 전에 연기 경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배역을 아주 훌륭히 소화해낸 걸 보니, 아마도 타고난 연기자였던 것 같네요. 1925년생에 점성술사로 평생을 일하다가 헬스클럽의 라커룸에서 이 영화의 캐스팅 디렉터를 만나 데뷔했다는 군요. 평생 꿈이 영화배우였다니, 세상을 등지기 전에 그 소원을 풀었으니 참 행복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제인을 연기한 Dree Hemingway는 대문호 Ernest Hemingway의 증손녀랍니다. 영화 중간, 제인의 직업이 나오는 부분에선 물론 대역을 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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