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당당한 남편에 대한 복수로 아내는 남편의 성기를 자르려 하지만 실패하자 대신 자신의 아들의 성기를 자릅니다(세상에나). 아버지는 아들의 불행에 보상하기 위해 성기 접합 수술에 대한 정보를 끌어 모으기에 바쁜 한편, 불륜 녀는 아들을 유혹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여자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불량배들과 얽혀 성범죄로 수감됩니다. 아들이 안쓰러운 아버지는 성기 없이 오르가즘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아들에게 전수하고, 출감한 아들은 또 다시 불륜녀의 주위를 맴돌다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새롭고 끔찍한 방법을 터득하고, 아버지는 아들의 성기 이식 수술을 가까스로 성공시키지만 아들은 발기불능이고, 그러다 한동안 잠적해 있던 엄마가 나타나자 이식한 성기가 반응을 보이고, 그래서 사실 알고 보니, 아들에게 이식한 성기의 기증자는, 바로…….
이야기 자체만 본다면 거의 화장실 유머나 야설 정도의 소재입니다. 이런 소재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는 코미디이기 쉽죠. 고금소총이나 데카메론, 우디 앨런의 코미디 같이 해학과 풍자가 필수적이란 말이죠.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개그 소재로나 어울릴 이야기를 김기덕 감독은 자기 식대로 진지하고, 그러면서도 불쾌하게 풀어냈단 말이에요.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한 마디로 감상하기에 편안한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는 노골적인 성적인 표현과 폭력, 피, 치정, 살인과 근친상간, 고통으로 범벅되어 있거든요. 그냥 끔찍해요. 김기덕의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이 말이죠.
표면적으로 영화는 치정과 폭력, 복수의 감정이 얽히고설킨 진지하고 끔찍한 정극처럼 보이지만, 사실 제 자신은 코미디로 감상했습니다. 개그 소재를 진지한 연기와 연출로 풀어냈을 뿐이지, 그 이면에는 남성성과 육체에 탐닉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이 피와 고통, 욕망이 철철 넘치는 블랙코미디를 저는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행동과 관계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섹스’입니다. 그들은 섹스 때문에 분노하고 섹스 때문에 사랑하며, 연민하고 고민하고 아파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서로에게 연결 되죠. 이야기의 가장 큰 동기인 ‘섹스’는 ‘거세’라는 행위를 통해 공격 받고요. 이는 결국 남성성에 대한 풍자로 읽히고 나아가서는 육체에 대한 집착을 비웃으려는 의도로 이어집니다. 이것을 좀 더 확장한다면, 우리들의 ‘겉치레에 대한 맹신’을 우회적으로 꼬집으려는 것일 수도 있겠죠. 아름다운 마음과 정신과 사랑에 빠지긴 어려워도, 섹스어필한 육체와는 너무나 쉽게 사랑에 빠지니까요.
‘남성성의 거세’라는 코드와 그것을 다루는 태도는 그동안 김기덕 표 영화를 공격해왔던 페미니스트들에게 어느 정도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감독의 제스처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의 질펀하고 여성 비하적인 시선은 아직 여전히 남아있지만요. 그것이 불편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현실인 것도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영화는 그런 현실의 부조리함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져요. 대표적인 예로 칼로 자해를 하면서 그것을 쾌락으로 삼으려는 장면을 보세요. 끔찍한 장면이지만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인물들은 모두 남근을 숭배하는 원시 종교에 빠진 사람들처럼 보이고 영화는 그들을 비웃고 있죠.
전작인 ‘피에타’가 비교적 유순한 멜로드라마였다면, 이 영화는 김기덕 본연의 색깔을 다시 드러냈다고 볼 수 있어요. 김기덕이 자신의 영화에서 고집해온 파국으로 치닫는 막장의 정서와 질펀하고 불쾌한 이미지들은 여전하지만, ‘폭력’의 이미지들이 어느 순간부터 ‘고통’의 이미지로 변화되었다는 것은 나름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에 제대로 된 대사가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사를 포함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당연한 순간에도 이 사람들은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거죠. 가족 오락관 같은 TV 프로에서 즐겨 써먹던 ‘무언의 XX’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여요. 진지한 얼굴로 연기를 하면서 억지로 말을 참고 있는 배우들을 상상해 보세요. 어떤 장면에선 키득거리면서 봤어요. 그런 효과를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꽃을 보기_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습곡_練習曲; 單車環島日誌_Island Etude_2006-리뷰 (0) | 2013.09.24 |
---|---|
관상_2013-리뷰 (0) | 2013.09.19 |
컨저링_the Conjuring_2013-리뷰 (0) | 2013.09.04 |
브로큰_Broken_2012-리뷰 (0) | 2013.09.03 |
숨바꼭질_2013-리뷰 (0) | 2013.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