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멕시코로 남편과 여행을 갔던 니키는, 그곳에서 그만 익사 사고로 남편, 개럿을 잃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하고 니키는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괴롭죠. 그러던 어느 날, 니키는 남편과 외모가 똑같은 남자, 탐을 만나게 되요.
여기서 외모가 똑같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니키가 죽은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죽은 남편은 어떤 남자였는지, 외모가 아주 똑같은 남자가 어떻게 지구 상에 존재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니키가 새로운 남자 톰과 왜 사랑에 빠지는가가 더 중요하죠.
영화 속의 니키는 톰에게 남편처럼 행동하고 남편이 좋아했던 스타일의 옷을 입히며, 그에게 과거를 기억하기를 강요하면서 죽은 남편에 집착합니다. 거의 정신병적 수준이에요. 니키가 톰을 사랑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죽은 남편을 꼭 빼닮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면서도 니키는 톰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피상적인 관심만 갖습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이웃에 사는 죽은 남편의 친구나 제 딸에게조차 새로운 애인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니키도 완전히 정신이 나간 여자는 아닙니다. 니키 역시 자신의 사랑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시종일관 유지되는 긴장감 때문에 영화는 단순한 멜로로만 보이질 않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아슬아슬한 로맨스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 궁금하죠. 니키에게도 톰에게도 감정이입이 가능하며, 특히 니키라는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영화의 의도를 만나게 됩니다.
제목처럼 영화는 사랑의 민낯이 과연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 ‘나는 대체 왜 하필 이 사람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런 질문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 아니에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정도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잔인해지기 어렵기 때문이죠. 아니면 너무나 영악하던가요.
니키를 그냥 단순히 정신 나간 여자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누군가와 왜 사랑에 빠졌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니키의 감정은 일방통행 같습니다. 톰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의 외모가 죽은 남편의 생김새와 단지 똑같다는 이유로 그를 고문하지요. 니키는 톰이라는 남자를 통해 죽은 남편의 환생을 꿈꿉니다. 그에게 죽은 이의 인격과 태도, 기억을 갖도록 집요하게 다그치죠.
다소 과장된 비유겠지만, 영화에서 니키가 보여주는 감정과 행동은 연예인이나 아이돌, 정치인들에 반하는 우리들의 행태와 별로 다르지 않아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격을 가졌는지, 문화적 배경과 성장 배경, 그만의 개성이나 특질은 무시한 채,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이나 정작 본인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부여한 환상과 허울에 열광하는 것이 팬덤의 가장 큰 특징이니까요.
안티들의 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함부로 정한 기준에 맞지 않아 싫어하는 거죠. 그건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이고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합니다. 이유란 근거이고 근거가 없는 사고나 행동, 감정은 니키의 그것과 같이 일방적으로 흐를 수 있으며, 종종 그런 감정과 사고, 행동은 상대방을 소유하고 군림하려는 그릇된 욕망으로 이어지기 쉽죠.
결과물로서의 영화는 꽤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이야기는 아주 자연스러운 긴장감을 유지하며 멜로의 감성을 잘 드러내고 있어요. 특히 과거와 현실을 오락가락하는 니키로 분(粉)한 아넷 베닝의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니키의 위태로운 행동을 지켜보며 그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만들어내죠. 개럿과 탐을 모두 연기한 에드 해리스도 훌륭하고요.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히치코크의 영화, ‘현기증(Vertigo, 58년 작)’이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영화의 주도적인 아이디어도 그렇고 그 영화를 기억에서 불러내는 장면들이 몇 개 있어요. 현기증의 주인공 스카티와 이 영화의 니키를 비교하는 것도 이 영화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엔딩이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아슬아슬함과 안쓰러움, 애정과 비난을 니키와 함께 경험했던 관객들에게 활짝 웃는 니키의 얼굴은 생뚱맞죠. 이야기 속에서 니키는 생전의 탐에게는 뮤즈였겠지만, 관객들에게는 가혹한 학대자 이상은 아니니까요. 니키가 속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용서를 구하는 최소한의 제스처라도 보여주길 바랐던 저 같은 관객들은 좀 불쾌하고 어처구니없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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