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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즈다_Wadjda_2012-리뷰

달콤한 쿠키 2014. 8. 5. 21:02

 


와즈다 (2014)

Wadjda 
8.8
감독
하이파 알-만수르
출연
와드 모하메드, 림 압둘라, 압둘라만 알고하니, 아드, 술탄 알 아사프
정보
드라마 |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 98 분 | 2014-06-19
글쓴이 평점  

 

사우디아라비아의 소녀, 와즈다는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지만 그 나라에선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동네 완구점에서 본 초록색 자전거에 마음을 홀딱 빼앗긴 와즈다는 그것을 사려고 마음먹지만 열 살 꼬마가 사기에 그 자전거는 너무 비싸죠. 엄마가 지갑을 열기는커녕 허락도 하질 않자, 와즈다는 축구팀 팔찌도 만들고 연애편지 배달도 하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들어오는 돈이 워낙 푼돈인데다 자신이 전달한 연애편지 때문에 교장선생님에게 문제 학생으로 찍히고 맙니다.

 

그러던 와즈다에게 희망이 보이는 사건이 생깁니다. 와즈다의 학교에서 곧 코란 퀴즈 경연대회가 열리기 때문이지요. 와즈다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참가 신청을 합니다. 그 대회에 1등만 한다면 문제 학생이라는 오명도 씻을 수 있고 자전거도 살 수 있어요. 상금이 꽤 많거든요. 하지만 과연 와즈다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요.

 

히잡(Hijab)으로 얼굴을 가리고 남자의 시선을 피해 다니며 일부다처가 허용되는 사회에서 남편을 빼앗길까 노심초사 몸을 웅크리고 사는 여자들의 모습은 우리 조선시대가 생각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재 모습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자전거라는 소재와 열 살 난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동심에 호소하며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인 척 하고 있지만 꽤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담고 있어요. 영화 속의 자전거라는 소재는 곧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해방이고 성적 평등의 상징입니다. 자전거를 향한 와즈다의 욕망은 어른들에 대한 도전이며 제도에 대한 일침, 크게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차별을 향한 도발인 동시에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과 자유를 위한, 세상을 향한 외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저런 나라가 있어?’하는 관객들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무심히 훑어보기만 해도 영화 속 사우디 여성들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지요. 히잡이나 그 정도만 약간 다를 뿐이지, 우리도 성적 불평등은 여전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 여성 운동의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그 깊이와 질적인 면에서는 서구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 완전한 여성해방은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성에 대한 편견은 아직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묻어나고, 성차별은 우리의 실생활에 너무나 밀착되어 있지요. 특히 남자들은 평범한 자신들의 언행이 언제 어떤 식으로 여자들을 상처주고 주눅 들게 만들며 불편하게 하는지조차 알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건 완전히 남자들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가부장의 분위기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달리 어떻게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느냐고 한다면 남자들을 위한 핑계처럼 들릴까요.

 

그런 점에서 달리 생각해 보면, 진정한 여성 평등을 부르짖고 선동할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상대 성(性)인 남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들이 변해야 완전한 성적 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구조적인 면에서 영화는 영화적인 트루기를 철저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주인공, 주인공의 갈등과 역경, 다양한 성격의 주변 인물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 그 간의 개연성, 그리고 복선까지요. 특히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를 가장 비중 있는 사건인 ‘코란 퀴즈 경연대회’에 두지 않은 것은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테마를 전달하기 위해 주인공인 와즈다와 더불어 와즈다의 엄마라는 캐릭터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와즈다의 드라마가 벽에 부딪혀 들리는 메아리라면, 엄마의 드라마는 확성기를 통한 부르짖음이라고 할 수 있죠. 결국 와즈다의 엄마는 현실에 굴복하지만 딸이 목적을 이루도록 도와줍니다. 이런 결말은 영화 내내 자전거 때문에 대립의 각을 세웠던 모녀 사이의 훈훈한 화해로도 볼 수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 간의 연대로도 읽힙니다.

잘 구축된 캐릭터에 아기자기한 이야기, 훈훈한 결말과 진지한 주제의식을 갖춘, 무척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와 관련해 더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가 개봉된 후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이 비로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게 영화의 힘이고 영화라는 예술이 사회적으로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재미와 더불어 이런 훈훈한 뒷이야기는 관객의 입장으로 영화에 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이 얻어가는 또 하나의 보람이고 만족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