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외곽의 반찬가게 ‘코코야’에서 일하는 세 노파, 코코, 마스코, 이쿠코가 주인공입니다. 이들 중 코코가 경영주이고, 마스코와 이쿠코는 종업원이지요. 노사 관계가 분명한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60대 전후의 나이도 비슷하고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인생의 공통점이 있어 서로 친구처럼 지내요.
세 주인공이 소설 속에 보여주는 삶의 무게는 비슷하지만, 각자 살아온 모습은 다릅니다. 코코는 잘 아는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겨 이혼당한 전력이 있고, 마스코는 육십 평생 짝사랑을 앓아오고 있으며, 이쿠코는 새댁일 때 두 살 난 아들을 잃고 그 슬픔을 남편에게 전가하다가 남편마저 죽자 어쩔 바를 모르는 사람이죠.
상처와 아픔으로 점철된 이들의 과거는 소설의 소재이면서 주제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런 여자들의 과거와 현재를 씨실과 날실로 삼아, 때론 슬프고 때론 아름답고, 때론 어이없는 실소를 흘리게 만들며 이들의 미래를 직조해 냅니다.
작품 속의 세 여자에게 환갑의 나이는 흔한 말로 숫자에 불과합니다. 코코야의 아이돌이 된 (거의 손자뻘인) 쌀집 총각 스스무를 사이에 둔 애정 쟁탈전만 봐도 이들에겐 아직 사랑과 질투을 위한 여력이 있다는 증거죠.
세 여자는 가끔 세 마녀가 되기도, 혹은 세 요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눈을 흘기다가도 서로의 아픔을 쓰다듬기도 하며 독자들에게 삶의 통찰을 전달합니다.
주요 인물 거의가 여자이고 공간적 배경에 맞게 음식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이 자국(일본)에서 (일본의 중요한, 어떤 어떤 문학상을 많이 탈 정도로) 많은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단순히 노년이나 여성, 로맨스에 초점을 두지 않고,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기’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과거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우울했고 행복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놓아버렸을 때 비로소 웃게 됩니다. 작품은 상처와 불행을 나눈다는 것은 꽤 중요하며, 행복이라는 것은 삶의 만족이고, 그것 또한 타인들의 협력이 있을 때 보다 수월하게 얻을 수 있다고 말하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겠지만, 그 의지를 갖기 위해 자신을 추스르는 것 또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잊지 않고 있어요. 마지막 장(章)에 보이는 마쓰코의 결혼에 코코와 이쿠코가 덩달아 행복한 것도 그 과정을 함께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작품 내내 지켜본 독자들이 행복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겠고요.
구성적인 면에서는, 총 11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장이 모두 화자를 달리하고, 각각의 완결도가 뚜렷합니다. 그래서 한 개의 장편이라기보다는 연작 소설의 느낌이 강해요. 장마다 시점을 오고가며 각각의 인물을 골고루 다루는 구성은, 여러 인물들을 작품 안에 배치하고 그들의 심리를 비교적 균등하고 세세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품 제목과 ‘반찬가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시락 가게)’라는 공간적 배경이 암시하듯이, 음식이 중요한 글감으로 등장합니다. 11개의 장에 붙여진 소제목은 모두 음식이나 식재료의 이름이고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일본 음식들은 대체로 소박합니다. 간략하게나마 조리법도 소개되어 있어서, 눈썰미가 있는 독자들은 대강이라도 흉내 낼 수도 있을 것도 같고요.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머위 꽃 된장 무침’이라는 음식이 나오는데, 우리에게도 꽃술을 제거한 호박꽃에 녹말을 묻히고 살짝 데쳐 된장에 버무려 먹거나, 아니면 그대로 된장국에 넣는 조리법이 있지요. 먹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등장인물 이름 외우는 어려움 때문에) 일본 소설은 비교적 기피하는 편인데, 도서관 사서에게 이 소설을 권했더니 ‘흐뭇한 소설’이었다는 답이 왔습니다. 그냥 ‘재미있다’라는 감상보다 ‘흐뭇하다’라니, 이 소설에 꽤, 썩 잘 어울리는 감상 같았어요. 이 책을 권한 저도 ‘흐뭇’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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