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_온다 리쿠-리뷰

달콤한 쿠키 2014. 11. 9. 17:39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저자
온다 리쿠 지음
출판사
노블마인 | 2007-07-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제20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 수상작 새로운 차원의 미스터리에 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이야기 1. 호텔 내부의 작은 공간. 분수대가 있고 정원처럼 꾸며지고 위로는 하늘이 보이는 그 공간은 카페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가미야란 이름의 노 극작가를 위한 파티가 열리는데 노 작가는 의문의 독살을 당합니다. 그가 마시던 홍차에 독이 발견됐지만 그 안에 독이 들어간 경위가 도무지 밝혀지지 않아요.

사건이 있은 후, 한 여자가 어떤 여자를 만나러 그곳에 다시 들릅니다. 두 사람은 여배우. 한 여자는 다른 여자에게 과거 같은 장소에서 죽은 극작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폭로하고, 그 죽음의 미스터리가 드러난 순간, 다른 여자는 피를 흘리며 쓰러집니다.

 

이야기 2. 호소부치라는 젊은 극작가는 도심 빌딩가의 뻥 뚫린 공간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아가씨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하지만 그 아가씨의 비극엔 의문의 증언이 따라요. 같은 시각, 주변의 상점가에서 세 명의 목격자가 나서는데, 그들의 증언은 각자 다릅니다. 어떤 이는 그 아가씨가 화가 나 있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울고 있었다고 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웃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같은 시각, 다른 각도에서 한 여자를 바라본 증언이 다르다는 미스터리를 자신이 기획하고 있는 희곡에 써먹으려고 하죠. 하지만 그 의문의 증언들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이야기 3. 여배우 세 명이 연극을 선보입니다. 세 여자는 어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형사 앞에서 취조를 당하는 연극이죠. 피해자는 세 여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하는 극작가. 그는 자신이 집필한 희곡의 여주인공으로 세 여배우들을 염두에 두고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을 확정하려고 했던 상태였습니다. 이혼하고 곧 재혼을 앞둔 그 극작가는 집안에서 살해당했고, 그 시각,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재혼녀의 알리바이는 세 여배우들의 증언에 의해 증명되고 사건의 혐의는 세 여배우들에게 돌려집니다. 죽은 극작가가 무대에 올릴 연극엔 어떤 여배우의 파렴치한 사생활과 과거를 폭로할 목적이 숨겨져 있었고, 그것을 알게 된 여배우들은 자신이 캐스팅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는 것이 경찰 수사의 초점이었죠. 사건은 과연 훌륭한 연극에 출연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여배우들의 욕망과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자 했던 여자들의 사심이 충돌한 결과였을까요.

 

이야기 4. 두 남자가 폐쇄된 철로를 따라 긴 여정을 떠납니다. 안개와 붉은 상사화로 뒤덮인 그 철길의 끝엔 인적이 끊긴 역 건물이 있고, 지금 그곳은 여름 한 철에만 연극 상영을 할 수 있는 소극장으로 꾸며져 있지요.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이 공연되던 지난 여름, 그 곳에서 귀신 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온다 리쿠의 이 소설은 모호합니다. 위에 짧게 요약한 네 개의 이야기가 서로 상관없기도, 서로 상관있기도 하죠. 네 개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고리는 느슨하고 극적인 사실감이 별로 없습니다. 작품은 대체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복잡하기만한 미로, 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끝없이 이어지는 뫼비우스 띠 같은 느낌을 주죠.

 

작품 안엔 많은 이야기와 다각적인 관점, 마지막엔 나름의 사건의 전말이 보이지만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작품 속의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혹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죠. 이 작품엔 무수한 사건이 일어났을 수도, 동시에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허구 속의 허구,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극 중 극이라는 장치를 여지없이 활용하며 독자들을 끝없는 악몽의 세계로 몰아넣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일본 버전 같이 보이죠. 느긋하고 별로 무섭지는 않지만 불쾌한 악몽을 꾼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온다 리쿠의 특기이고 장점이니까요.

작품 속의 ‘우화 같은 분위기, 숨겨진 시선, 연극이 끝났을 때의 예상했던 착지점과의 현혹적인 어긋남’이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지향점을 스스로 정의한 것처럼 보입니다.

 

 

작품이 지향하는 환상을 벗어나서 현실로 돌아온다면 좀 더 냉철한 작품 분석이나 이해가 가능할까요?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지도 같습니다. 꿈에 대한 해석은 결코 현실적일 수 없으니까요. 꿈(특히 악몽)에 대한 해몽은 결코 당사자를 만족시키기란 드뭅니다. 꿈은 꿈으로, 악몽 역시 꿈으로 남겨지고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묘하고 모호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온다 리쿠의 이런 작품 세계가 분명 장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기승전결의 구조와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분명 이 작품은 진짜 ‘악몽’ 같은 독서 경험이리라 생각됩니다. 저에겐 나름 즐거운 여정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세상을 사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관객이기도 하다는 작가의 삶에 대한 관점이었어요. 기묘한 세계를 그려내면서도 작가는 열정과 순수함의 미덕, ‘진정한 나’를 인식하는 것에 대해 방점을 찍습니다. 이것이 곧 이 작품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문장처럼 보이는 것은 작품 곳곳에서 ‘보기’와 ‘보이기’에 대한 통찰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나 자신’을 ‘연기하는’ 것은 진정한 나 자신을 ‘사는’ 것만큼 어렵죠.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진정한 나’를 인식하고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