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편의 단편이 실린 최제훈의 이 소설집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 진지함과 농담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독창적인 분위기가 일품입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형식과 주제 면에서 일종의 통일감을 갖추고 있어요.
무엇보다 유쾌하고 재밌습니다. 발랄한 문체에 으스스한 소재를 다룰 때에도 그 경쾌함을 잃지 않고 있죠. 성공적인 문학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읽히는 힘’을 첫 번째로 손에 꼽는 저 같은 독자들에게는 무척 만족스러운 독서가 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자유분방합니다. 프랑켄슈타인이나 그 저자 메리 셸리, 그리스 신화의 몇몇 신들, 그리고 코난 도일이나 그의 작품 속 인물인 셜록 홈즈 등등을 데려와 자신의 소설에 심는 것 정도는 예도 아니죠. 심지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셜록 홈즈가 범죄 현장에서 대면한 것이 살해당한 코난 도일이라면 말 다했죠. 저작권이고 뭐고 거침없는 상상력에 읽는 제가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그건 작가와 출판사가 감당할 문제이고, 독자로서 즐거움이 보장되니 상관할 바는 아니죠.
표제작이면서 작가의 문단 데뷔작인 ‘퀴르발 남작의 성’의 소재는 동명의 소설이고 그것을 원작으로 한 헐리웃 컬트 호러 영화입니다. 물론 그 소재 역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창조물인데, 시공을 넘나드는 내러티브로 그 가상의 영화에 존재감을 부여합니다. 상상의 그 콘텐츠는 시간과 장소,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에 따라 그 의미가 자유롭게, 혹은 자기 식대로 변주되죠.
시공과 관점을 오가며 그 가상의 소설과 영화의 문제의식(곧 작가의 문제의식)은 확대되고 재생산됩니다. 물질에 대한 인간들의 비틀린 욕망을 비웃는가 하면, 폭력과 미디어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콘텐츠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시대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무척 중요하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가상의 헐리웃 호러 클래식 영화를 평하는 논설에 드러난 매카시즘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다시 찾아온 ‘반공주의’를 연상케 하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이런 작가의 화법은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에서도 보입니다. 상상의 캐릭터인 마녀와 그리스 신들을 등장시켜 중세의 마녀 사냥을 화두로 한 이 작품에는 희생양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편견’이 어떤 식으로 힘을 갖고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똑같은 상상을 하게 되면, 그건 더 이상 상상이 아니게 된다’는 작품 속 구절처럼, 집단 망상이 기정사실이 되고, 그것을 넘어선 광적인 행동이 용납되는 것은 비단 소설 같은 허구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 으스스한 여운을 남기죠. 특히 작가는 ‘비극 그 자체엔 점점 무뎌지고 그에 부속된 감정의 피상성에 함몰되는’ 것을 경고하면서 지금 우리의 슬픔과 분노, 안타까움이 단지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반응은 아닌지 성찰을 요구합니다.
원작을 해체하여 창조를 빙자한 유쾌한 난장으로 만들려는 작가의 의도는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과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도 보입니다.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에서는 셜록 홈즈의 창조자인 코난 도일이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사건 해결자는 물론 셜록 홈즈고요. 셜록 홈즈 단편 스타일을 본뜬 이 작품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무게 중심, 정체성의 문제 등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만든 캐릭터의 인기로 정작 작가 자신은 그 그늘에 묻혀 실존의 고뇌에 빠진다는 홈즈의 해석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모호해지는 정체성에 대한 담론으로 읽히기도 하죠.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 붕괴의 대상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이 또한 즐거운 난장판 같은 작품이죠. 원작자인 메리 셸리는 물론이고 그 작품 속 캐릭터들이 총출연하니까요.
작가는 메리 셸리의 소설과 그것을 원작으로 한 31년의 헐리웃 클래식 영화를 비교하며 그 간극을 읽어냄으로, 작품 속 괴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오히려 그 창조자인 프랑켄슈타인 박사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작가는 소설이나 영화 속의 소외된 인물들에게 그럴 듯한 동기를 부여함으로 원작을 해체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소설 ‘프랑켄슈타인’과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대상으로 재미나게 쓴 ‘리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작품집에서 드러난 작가 최제훈의 관심은 정체성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매듭’에서는 타인의 인생에 개입하는 여러 양상들을 관찰하고,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그림자 박제’에서는 썩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과거의 것도 현재의 것도 아닌 박제된 증오심과 과거로부터의 분노를 보여주며,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에서는 지옥이 만들어낸 지옥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들죠.
마지막 작품인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는 일종의 에필로그인데,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습니다. 이 작품집을 마무리하는 데에 손색이 없는, 작가의 그악한 상상력이 그야말로 끈질길 정도로 종횡무진 발휘되는, 유쾌한 난장의 장(場)이죠.
작가의 데뷔작인 이 소설집엔 작가가 꾸준히 관심을 가지려는 주제가 관통하고 있습니다. 바로 정체성의 문제인데, ‘A는 B이고, C는 D인데, 알고 보니 D는 바로 A’라는 식의 정체성의 미스터리는 다음 장편인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도 드러나는 주제죠. 난해하고 다소 모호했던 그 연작 장편보다는 이 작품집에서 작가의 기량과 주제 의식이 조금 더 두드러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족.
1. 프랑켄슈타인과 셜록 홈즈 시리즈를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아마 이 소설집의 후유증이겠지요. 읽을 책이 잔뜩 쌓였는데, 언제 읽을지.
2.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에서 작가가 인용한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가슴이 절절히 와닿습니다. 아마 가을이라는 계절 탓이겠지요.
'꽃을 읽기_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장 속의 치요_오기와라 히로시-리뷰 (0) | 2014.11.15 |
---|---|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_온다 리쿠-리뷰 (0) | 2014.11.09 |
내가 잠들기 전에_S. J. Watson-리뷰 (0) | 2014.10.12 |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_An Autobiography_1977-리뷰 (0) | 2014.09.25 |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_이노우에 아레노-리뷰 (0) | 2014.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