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tha Christie 다시 읽기

서재의 시체_Body in the Library_1942-리뷰

달콤한 쿠키 2015. 4. 5. 18:20


마플 양이 사는 세인트 메어리 미드의 유지이자, 그녀의 친구인 밴트리 가(家)의 서재에서 어느 날 아침, 젊은 여자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사인은 교살에 의한 질식사. 천박한 화장에 싸구려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그 여자는 신원이 오리무중입니다. 경찰의 수사는 물론이고 온 동네의 소문이 밴트리 대령에게 향하자, 밴트리 부인은 자신의 친구인 제인 마플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미혼의 할머니인 제인 마플은 날카로운 통찰과 인간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살인 같은 범죄를 비롯한 다양한 수수께끼들을 해결한 동네의 스타였죠. 그러다 죽은 여자가 이웃 마을의 한 호텔에서 댄서로 일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마플 양과 밴트리 부인은 그곳으로 잠입(?)합니다.

 

대저택의 서재. 책으로 둘러싸이고 벽난로에선 불이 활활 타오르고, 그 앞에 깔린 두꺼운 양탄자 위에서 발견되는 묘령의 여인의 시체. 이런 장면이 서양문화권에서는 어떤 상징처럼 여겨지는가 봅니다. 책의 서두에서 작가가 밝힌 것처럼 (혹은 스스로 인정했듯이) 이 작품은 이런 구태의연함에서 출발합니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을 쓰는 것이 어떤 도전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첫 장면은 정해졌으니, 이 여자를 누구로 할까. 왜, 그리고 어떻게 죽었을까. 주변엔 어떤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동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기타 등등.

 

42년 作으로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장점과 특기가 총동원된 (반대로 클리셰들도 넘치는) 작품입니다. 작가가 가장 전성기(작품의 질적, 양적 모두의 면에서) 때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후던잇(Whodunit)’ 장르의 작품이죠. 초반에 수수께끼가 던져지고 용의자들이 나열되고 우리의 명탐정은 단서를 찾아 종횡무진 활약합니다. 결말엔 의외의 범인이 등장하고 독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은 기본이에요. 일단 이 작품은 재미있고 읽히는 속도가 빠릅니다. ‘목사관 살인사건’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마플 양의 이웃들인 익숙한 인물들의 등장에도 소소한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을 거고요. 살인사건 자체는 무겁고 진지한 소재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작가의 펜은 무척 가볍습니다. 마플 양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작가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고 써가면서 무척 즐기고 있음이 느껴져요. 사실은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을 테지만요.

 

작가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좋아합니다. 이 작품이 주목받았던 이유가 있다면, 작가의 30년 作인 <목사관 살인사건 (Murder at the Vicarage)>에 처음 독자들에게 소개된 미스 제인 마플(Miss Jane Marple)이 등장한다는 점이겠죠. 마플 양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두 번째 장편인데, 미스 제인 마플은 추리소설 역사상, 전형적인 안락의자형 탐정(Arm-chair Detective)이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런 특성은 아직 갖춰지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마플 양은 염탐도 하고 추적도 하는 등, 꽤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지요. (두 작품 사이에 <화요일 클럽의 살인 (Tuesday Club Murders, 32년 作)>이라는 단편집이 있는데, 이 작품집에 실린 열세 편의 단편들 속에서 보여주는 마플 양의 활약이 대단한 것은 둘째 치고, 안락의자 탐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긴 합니다. 화요일 수다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전달하는 기묘한 사건들의 진상을 정말 ‘말만 듣고’ 정확히 꿰뚫어 보니까요.)

이 작품의 트릭은 크리스티가 즐겨 사용했던 (다른 말로 무수히 우려먹었던)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시체를 바꿔치기 하는 것인데, 이는 피해자의 신원을 속여 수사에 방해수를 두거나, 범인의 알리바이를 속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과학에 기반을 둔 오늘날의 수사력과 비교한다면 말도 안 되는 방법이죠. 그러니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작품 속에 드러난 작가의 범죄관 역시 크리스티가 일생을 통해 보여주고 다뤄왔던 것들과는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작품에 보이는 살인은 돈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사리사욕에 의한 범죄라고 할 수 있죠. 이야기 속의 범인은 보다 편리하고 멋진 삶을 위해 살인을 하니까요. 작가에 의하면, 살인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사악한 행동이며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범죄자의 인권 역시 중요시 여기며, 그 동기와 심리적인 배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강조되는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지요. 뭐가 옳고 어떤 것이 더 나은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설왕설래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주 단순히, 피상적으로나마 ‘인간의 물욕’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악(惡)을 본다면, 충분히 동감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욕심(혹은 욕망, 혹은 욕구 등)이라는 것은 어떤 의도에서 시작됐든 도를 넘으면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 윤리나 도덕 같은 ‘인간의 의무’는 저버리기 쉽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무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조차 그런 유혹에 빠지는 것을 볼 때면 ‘보편적인 인간성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마저 무너지는 경험을 하곤 하죠. 본인 역시, ‘욕심’에 있어선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라, 이런 말하는 것조차 민망하긴 하네요.

거의 모든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은 주로 ‘성악설(性惡說)’을 바탕으로 하는 듯이 보입니다. 크리스티가 다루는 범인들의 동기는 ‘사악함’에 대한 절대 다수의 이해를 동반하죠. 그 범인을 동정하기가 절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본인으로서는 그런 관점에 상당히 강하게 동의하는 편인데, 인간은 절대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은 제가 갖고 있는 믿음이기 때문이죠. 온갖 범죄가 만연하고 세상에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지도자가 아닌) ‘윗사람’이 없다는 점은 그런 믿음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누군가의 모범이 된다는 것이 반드시 ‘선함’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우리 인간들은 ‘진짜 악한’, ‘악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은 훨씬 나중에 출간된 <복수의 여신 (Nemesis, 71년 作)>과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플 양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것도 같고, 작품 안에서 구사되는 트릭도 아주 비슷하죠.

크리스티는 기본 플롯만 가지고 여러 편의 작품을 썼던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살을 떼어놓고 뼈대만 본다면(이것이 ‘환골탈태’의 진정한 의미죠), 서로 비슷한 작품들이 꽤 많거든요. 그래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거듭 읽을수록 맛이 우러납니다. 읽으면서 작품 구조와 기타의 요소들을 분석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거든요.

위에 언급한 ‘복수의 여신’은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사족.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말을 흔히들 사용하는데, 그 정확한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요즘 흔히 사용하는 의미도 갖고 있긴 한데, 그것보다 더 적확한 사용처가 따로 있는 말이죠. 사전에 풀이된 ‘1번’ 의미보다 ‘2번’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되는, 흔하지 않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데엔 방송의 역할이 아주 컸어요. 화를 내거나 불평할 사안은 아니지만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