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없지만 범인에 대한 암시가 적잖이 언급됩니다. 이 작품을 안 읽었거나 읽을 계획이라면 이 리뷰를 피하세요.
‘포와로’는 어느 날, ‘에밀리 에런델’이라는 나이 지긋한 노숙녀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노숙녀는 그 편지를 통해 최근에 자신에게 일어난 계단에서의 사고에 대해 은밀한 조사를 부탁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편지가 쓴 날로부터 두 달이나 늦게 배달된 거였죠. 편지의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두 달이나 늦게 편지를 부친 이유에 대해 포와로는 호기심을 갖고 노숙녀를 방문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포와로가 에밀리 에런델을 방문했을 때는 노숙녀가 오랫동안 앓아왔던 지병으로 이미 두 달 전에 숨을 거둔 후였습니다. 그리고 평생 독신이었던 에밀리의 꽤 많은 재산이 세 명의 조카와 조카사위가 아닌, 고용된 말동무(컴패니언)인 ‘윌헬미나 로슨 양’에게 물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탐정이란 신분을 숨긴 포와로는 은밀한 방법으로 조사에 착수합니다. 그 결과, 친척들에게 물려져야 할 에밀리의 유산이 생판 남에게 돌아간 이유가 있으며, 조카들이 그동안 이모의 재산에 대한 욕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왔다는(심지어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 고인이 사망하기 바로 며칠 전에 조카들에게 유리했던 유언의 내용을 뒤엎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인이 겪었던 계단에서의 추락사고가 우연이 아닌, 에밀리의 죽음을 원했던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된 살인 의도였음을 알게 되죠.
사건 의뢰인이자 중요한 증인을 잃은 포와로(Poirot Loses A Client)는 궁금해집니다. 에밀리 애런델의 죽음은 과연 자연사였을까요?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가 37년에 내놓은 이 작품은 전형적인 포와로 미스터리입니다. 초반에 의문스러운 죽음이 등장하고 배경이 설명되고 용의자들이 나열되죠. 은밀하고 교묘하게 숨겨진 단서와 복선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며 포와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독자들은 전혀 오리무중이고 탐정의 추리 과정은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속 시원히 밝혀집니다. 많은 용의자들 중에서 범인이 의외의 인물이라는 것도 예외는 아니죠. 여기에 대가족 내의 살인이라는 ‘홈 머더(Home Murder)’ 스타일의 배경과 ‘범죄의 유전학’이라는 소재, 내레이터로 등장하는 포와로의 단짝인 ‘헤이스팅즈’ 대위라는 인물이 더해져 작가의 전성기이자 포와로의 전성기인 30년대 작품의 특징을 모두 아우르고 있어요. 이런 포와로 소설의 전형성은 곧 작가의 전형성과도 통합니다. 작가의 30년대 작풍(作風)을 엿볼 수 있어요.
이 작품은 크리스티의 여느 추리소설들이 그렇듯이 물론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 전후로 작가가 쓴 다른 추리소설들에 비해 정밀함은 약간 떨어지는 편이죠. 누군가의 죽음이 자연사인지 살인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미스터리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하지만 ‘심리학’에 입각한 포와로의 추리는 잘 들여다보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입니다. 물리적인 단서는 충분하지 않고 ‘회색 뇌세포’를 동원해야 하는 심리적인 단서도 신빙성이 다소 빈약합니다. 물론 결말에 이르러 포와로의 설명을 들으면 명쾌해지지만, 그 추리의 과정엔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을 완전히 배제할 수가 없는 거죠.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이 작품의 플롯은 무척 정교합니다. 서스펜스가 상당히 잘 구축되어 있어요. 포와로의 수사가 거의 탐문 형식이라 300쪽이 넘는 분량이 지루할 수 있었음에도 이 소설은 잘 읽힙니다. 이 정적(靜的)인 작품에서 묘하게 표출되는 긴장감은 이야기의 성질에서 오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추리소설적인 재미는 오히려 군데군데 드러나는 예상치 않은, 뜻밖의 사실들이 드러나는 순간들에 있으며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밝혀질 때의 쾌감은 정교한 플롯에 기인하죠. ‘이야기의 구성’이 잘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범인의 동기는 아주 단순하게 보이지만 의외로 복잡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포와로의 ‘심리학의 의거한 추리’가 개입되는데, 살인자는 그저 ‘돈을 원했을 뿐’은 아니었어요. 그 물질적인 욕구 뒤엔 잘못된 결혼에 대한 회의,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 대한 증오, 잘 나가는 타인에 대한 질투, 무너진 자존감, 잘못된 과거를 돌이키고자 하는 과욕 같은 회한들이 있어, 그것들이 한데 뭉쳐 과도한 모성애를 만들어 냅니다. 범인의 동기는 마치 자신의 불행을 타인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와 비슷합니다. ‘모성애’라는 단어가 그럴 듯하게 들리고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는 해도,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죠.
포와로가 범죄를 마무리하는 방법은 약간 정도(正道)를 벗어나긴 했지만, 범인의 동기를 이해한다면 수긍이 갑니다. 비록 무자비하고 이기적인 살인자였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연민은 저버릴 수 없었던 거죠. 사건의 전말이 세상에 드러나고 살인자가 법의 심판을 받을 일은 없겠지만 범인은 죽음으로서 면죄부를 얻습니다. 범인은 이미 ‘윤리’의 심판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리란 생각은, 그게 최선책은 아닐지라도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포와로의 우려로 충분한 설득력을 얻게 되죠. 남은 사람들의 훈훈한 결말도 마찬가지고요. 따지고 보면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이런 식의 결말이 꽤 많은 편인 것 같아요. 개인으로서의 애거서 크리스티는 분명 정의로운 사람이었지만 법은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가장 훌륭하고 완벽한 법은 법전이 아닌 바로 우리, ‘인간’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사족.
당시(30년대)의 영국 여성들의 복식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잠옷이나 침실용 나이트가운에 브로치를 다는 습관에 대해서는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이것이 아주 유용한 단서로 나오거든요. 지금으로서는 언감생심이지만 당시엔 일반적인 트렌드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원제인 <Dumb Witness>는 에밀리의 견공(犬公)인 ‘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읽은 최근에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밥’은 그날 밤, 집 밖에 나가있었으니 목격자(혹은 목격견)가 될 수 없었으니까요.
도서 정보는 아래로...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82737329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38202451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38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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