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뉴엘’은 스스로를 동기 없는 살인자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세상에 나온 대가로 출산 중에 엄마가 죽었기 때문이죠. 자신의 표현대로 ‘형기가 끝나길 기다리며 죗값을 치르는 중’인 엠마뉴엘은 사진으로밖에 만날 수 없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그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끌어안고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갑니다. 당연히 아빠나 새엄마인 ‘재니스’와도 사이가 별로죠.
그러던 그들의 옆집에 ‘린다’라는 여자가 이사를 옵니다. ‘클로이’라는 이름의 갓난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 린다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새로운 이웃에 호기심을 갖게 된 엠마뉴엘은 린다가 베이비시터를 구한다는 소리에 그 자리를 자청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몇 시간을 린다 모녀와 함께 보내게 된 엠마뉴엘은 린다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이후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만, 미리 알고 이 영화를 감상해도 크게 지장은 없어요. 하지만 ‘무슨 소리…’ 하실 분들은 제 리뷰를 읽지 마세요.
‘살아있는 아기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그게 인형이더라’는 소재만 놓고 보면, 미친 여자가 나오는 모성애를 테마로 한 호러나 스릴러 장르의 영화가 상상됩니다. 이 영화 역시 스릴러 장르에 한 발을 살짝 걸치고 있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이 영화는 영민하게도 그 소재에 유난을 떨거나 호들갑을 부리지 않고 트라우마에 짓눌린 인물들의 자기 회복 과정을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린다와 그 아기의 비밀은 반전의 노림수가 아닌, 단순한 국면 전환의 장치로 활용되죠. 린다의 비밀는 비교적 영화 초반에 드러나고, 그 이후엔 화해와 타협의 드라마에 집중합니다.
이런 장르의 전환을 불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감상은 약간 다릅니다. 이 영화는 특이한 질감의 서스펜스로 충만하고 그 긴장감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어요. 영화 전반에 흐르는 서스펜스의 구조를 살펴보면 재미있습니다. 이야기의 긴장감은 인형을 아기라고 믿고 있는 린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린다를 보호해주고 그녀의 비밀을 지켜주려고 하는 엠마뉴엘에게서 비롯되죠. 관객들은 엠마뉴엘이 린다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인지, 만약 그것이 세상에 폭로된다면 엠마뉴엘이 과연 어떻게 린다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며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그 긴장감엔 (당연히) 엠마뉴엘과 린다 사이에 흐르는 성적인 긴장감도 포함됩니다. 아주 교묘하게 숨겨져 있고 매우 은밀하게 드러나지만, 두 여자의 동성애적인 감정을 잡아낸 관객들도 많을 것 같아요.
결국 엠마뉴엘의 바람과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린다는 억지로 현실로 끌려나옵니다. 린다는 망상증을 치료하고 과연 행복하게 될까요. 어쩌면 자신의 망상 속에서 행복했던 린다는 현실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다시 불행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의 조건들이 반드시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니까요.
바로 그런 관점에서 영화를 들여다보면, 영화가 단순히 ‘모성애’에 국한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게 보이죠. 엠마뉴엘이 린다의 비밀을 지켜주려고 노력했던 이유도 아마 현실이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공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꿈꾸는 자를 깨우지 말라는 외국 속담도 있지요. 가끔 ‘달콤한 꿈’이 현실보다 더 만족스러울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진실은 상처를 주는 법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그런 맥락에서 영화의 엔딩은 약간 어색하고 불편한 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엄마, 어린 딸)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두 여자가 린다의 인형을 매장함으로서, 과거를 잊고 극복하여 고통의 근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행복에 대한 보편적인 기대를 저버리는 주제로부터 약간 동떨어지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엔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름 이야기를 잘 마무리하긴 했지만 약간 강요당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영화에 끊임없이 보이는 ‘물’의 이미지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관련한 소재로 읽힙니다. 그리고 엠마뉴엘이 남자친구와 첫 데이트를 하는 장소는 마치 여성의 생식기처럼 보이고요. 두 사람을 멀리서 조감(鳥瞰)하고 있는 장면을 보세요. 아무리 아닌 것처럼 굴어도, 역시 ‘모성(母性)’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느닷없이 엠마뉴엘과 재니스의 화해를 암시하는 장면도 그렇고 말이죠.
사족.
제목이 왜 ‘엠마뉴엘의 진실’이었을까요. 비밀을 갖고 있는 것은 린다였는데요.
이 영화의 정보는 아래로...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76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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