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어딘가의 나이에 십대의 딸이 있는 ‘테레사’는 오스트리아의 집을 떠나 혼자 케냐를 여행 중입니다. 그곳에서 사귄 또래의 친구들은 케냐의 젊은 흑인 남자들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그 말은 테레사에게 차츰 농담이 아니게 됩니다.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섹스를 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영화는 다양한 색과 두께의 잔영을 드리우고 복잡한 메아리를 남깁니다.
표면적으로 테레사는 성을 구매하려는 여성입니다. 자신보다 젊은, 친구들 말대로 ‘싱싱한’ 남자들과 섹스를 하기 위해 지갑을 엽니다.
흑인들을 상대로 섹스를 사려는 테레사의 모습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봅니다. 케냐에서의 테레사는 잘 사는 나라에서 온 백인 여행객으로서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사는 흑인들에게 권력을 행세합니다. 공공연하게 흑인 남자들을 ‘사냥’해도 지탄받지 않습니다. 테레사는 모국이나 다른 여행지에서는 엄두도 못 낼 행동과 요구에 당당합니다. 거리낌이 없습니다. 여행지가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였다면 테레사가 같은 일을 저리 쉽게 시도할까요.
일반적으로 상상되는 ‘성매매’의 역할이 역전되어 있습니다. 수요자는 여성이고 공급자는 남성입니다. 이런 역할의 반전은 사회적, 육체적 약자들의 ‘역습’, 혹은 ‘저항’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절반만 성공합니다. 침대로 따라들어온 남자들이 원했던 건 ‘돈’이었습니다. 남자들은 온갖 수단, 거짓말과 달콤하지만 속 빈 말들로 테레사에게서 돈을 쥐어짜내려 합니다. 지갑을 여는 테레사의 모습은 무척 쓸쓸해 보입니다. 그렇게 부유한 유럽 국가 출신의 백인 여자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흑인들에게 이용당합니다. ‘착취당하는 여성’이란 두꺼운 껍질은 ‘백인’과 ‘돈’이라는 막강한 총알로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모국인 오스트리아에서의 테레사의 삶은 엉망진창까지는 아니어도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테레사는 한 사람의 커리어 우먼이면서 사춘기의 딸에게 잔소리를 쏘아대면서 사랑하는 어머니입니다. 남편은 없는 것 같고 혼자 딸을 키우면서 자신이 주는 사랑을 그 딸로부터 되돌려 받고 싶지만 그럴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딸이 냉정해서일 수도 있고 아직 어려서 부모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테레사는 이미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요구되는(혹은 강요받는)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이미 잃었거나 잃는 중입니다. 한창 때의 미모는 온데간데없고 체중은 점점 불고 가슴은 처지고, 온몸 구석구석에 셀룰라이트가 울퉁불퉁 쌓여갑니다. 보기에 썩 아름답지 않은 육체는 세월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외롭고 고된 삶의 찌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테레사는 자신에게 변함없는 관심을 보여주고 사랑을 속삭이며, 자신이 가진 내면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자신에게 아직 아름답다고 속삭여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교묘히, 꽤 잘 숨겨왔던 그 욕망은 익숙한 터전을 벗어나 타국의 이방인이 되자 폭발합니다. 케냐에서 테레사는 성적으로 타락함으로서 억눌린 본능을 발산하고 욕망을 해소하며 스트레스를 풀려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을 찾고 싶어 합니다. 테레사가 원했던 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스스로의 인생을 더욱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테레사는 원하는 걸 얻질 못합니다. 섹스는 결국 사랑이 아니었고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거였습니다. 테레사는 남자들에게 섹스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그게 테레사의 실수라면 실수로 보입니다. 결국 테레사는 쾌락도 위로도 받지 못하고 실망과 상처만 얻습니다. 여행의 원래 목적이 그런 게 아니었다 해도 (적어도 관객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여행 기간 내내 그 일에 매달렸으니, 테레사의 여행은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역시 집 밖은 위험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테레사를 비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실수를 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 같으니까요.
영화는 집으로 돌아오는 테레사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테레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태도로 삶을 이어나갈지 궁금해집니다. 테레사가 여행의 후유증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요?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이 실수를 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다면 삶은 분명 미로일 테지만 미로엔 반드시 출구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우울하고 암담한 영화입니다. 기분전환용으로 적당한 영화는 아닌 것 같지만, 누가 또 아나요. 남의 불행을 보고 행복해 하는 저 같은 (변태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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