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기_영화

귀부인과 승무원_Swept Away_리뷰

달콤한 쿠키 2013. 8. 18. 08:15

 


무인도의 열정

Swept Away... By An unusual Destiny In The Blue Sea Of August 
8.5
감독
리나 베르트뮬러
출연
지안카를로 지아니니, 마리안젤라 멜라토, 리카르도 살비노, 이사 다니엘리, 알도 푸글리시
정보
어드벤처, 코미디 | 이탈리아 | 116 분 | -
글쓴이 평점  

 

1. 대략 줄거리를 말씀드리면, 아름다운 귀부인 라파엘라와 뱃사람 제나리노는 함께 요트 여행 중이었던 일행과 떨어져 보트 난파 사고를 당합니다. 지중해를 떠돌던 두 사람은 가까스로 무인도에 도착하죠. 두 생존자는 여러 면에서 서로 반대입니다.

라파엘라는 지식인이고 갑부의 남편을 뒀어요. 그녀는 명령하는 것이 익숙하고 제나리노 같은 사람들의 시중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여자죠.

반면 제나리노는 거칠고 무식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뱃사람에 불과한 데다, 명령 받는 것에 익숙하지만 부자들을 증오하며 항상 불만에 차 있는 공산주의자였거든요.

 

무인도에 도착하자 상황은 역전됩니다. 제나리노는 남성성을 무기로 라파엘라를 협박하고 겁을 줘서 거의 자신의 노예로 만듭니다. 라파엘라는 그런 제나리노에게 반항하지만 어쩔 수 없는 여성성의 한계로 그에게 굴복하고 말아요. 그러다가 라파엘라는 제나리노를 사랑하게 되고, 라파엘라를 무시하던 제나리노 또한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2. 무인도에 떨어진 두 남녀라는 캐릭터나, 해변에서의 정사, 이런 설정들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에로 영화 정도로 소개되고 소비되었습니다. 74년도 작품이니, 그 이후로 히트한 ‘라 붐’이나 ‘블루 라군’ 같은 영화들의 선배격이라 할 수 있어요.

 

고딩 시절, 비디오로 봤었고, 이 영화를 몇 년 전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감상이 다르더군요. 단순한 에로 영화나 로맨스 영화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바로 최근 이 영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얼까, 하는 고민도 함께 말이죠.

 

3. 영화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가장 풍부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부분이 바로 무인도 이야기입니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의 권력이 역전되며 사랑이 싹트니까요.

제나리노는 라파엘라를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설거지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라파엘라로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 무인도 생활에서 제라니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제라니노에게 그녀에게 관대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 특유의 사상으로 나도 일하는 만큼 너도 일을 하라, 이런 식이죠.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부자들에 대한 분노가 터지고,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라파엘라에게 복수심을 드러낸 거예요. 난폭할 수 있는 그의 행동에 라파엘라는 차츰 길들여지고, 무례한 그 모습에 사랑을 느낍니다. 그 사랑은 제라니노도 되돌려 주고요.

 

4. 결말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두 사람은 구출되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무인도를 벗어나도 사랑은 변치 않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눈물을 머금으며 각자의 인생을 살기로 결정합니다. 다시 원점인 거죠.

영화적인 여운과 감동적인 결말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마무리였다고 쳐도,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최근입니다.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때조차 갖지 못했던 관점인 거죠. 두 사람은 진짜 서로 사랑을 했던 걸까요?

 

지금으로선 그 질문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두 사람은 진짜 사랑을 한 것이 아니었어요. 서로 사랑을 한다고 착각했던 것뿐이죠.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무인도 생활의 외로움, 적적함,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절실한 요구 등에 의한 조작된 감정일 것이라는 것이 지금의 제 생각이에요. 평소 같으면 얼굴을 마주하거나 필요한 것 이상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나눈 것은 그냥 ‘관계 맺음’ 이상은 아니었던 거죠. 영화적인 태도나 의도를 무시한다면 두 사람의 감정이 진짜 어떤 모습인지 보입니다. 그것은 ‘가짜’는 아니지만 ‘진실한 사랑’은 아니었던 거지요.

 

때때로 외로움은 지나친 감정 소비를 유도합니다. ‘사랑에 속지 말라’는 조언은 그래서 쓸모가 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랑이라는 믿음에 속지 말라’로 고쳐야겠지요. 사랑 그 자체엔 문제가 없으니까요. 이것이 사랑이라고 믿게 만드는 감정에 문제가 있는 거죠. 사랑이었다고 믿었던 감정이 그 이후로 훨씬 시간이 지나 냉정하게 그 감정을 바라볼 때, 그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는 경험은 귀한 일이 아닙니다. 사랑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믿음, 감정 자체가 우리를 속이고 있는 셈인 거죠.

 

그런데 그것이 함정일까요? 그것은 잘 모르겠네요. 그것이 착각이든 아니든, 그저 그 감정을 누리라는 말이면 충분할는지.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락가락합니다.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감정의 속임수에 매번 속으면서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계속 원하니까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말이죠. 우리가 본연의 외로움을 극복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사랑을 끊임없이 원하며 추구할 테고, 영화 속의 제라니노와 라파엘라처럼 신기루를 현실로 착각하는 실수를 빈번히 저지를 테니까요. 신기루라도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그것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