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컨트리맨(The Necessary Death Of Charlie Countryman)을 보면서 생각났던 영화입니다. 2007년 작이고 그 해에 개봉했었죠.
주진모의 팬이라 개봉 첫 날, 조조로 관람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 다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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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외모에 다부진 체격, 주먹도 꽤 잘 쓰고, 의리 또한 남다른 남자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편엔, 한때 부유했으나 몰락한 집안의 딸로 불량배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몸을 팔게 된 여자 주인공이 있고요.
두 주인공은 어려서 만나 사랑을 느꼈다가 좀 있다 헤어지고, 좀 커서 만났다가 사랑을 맹세하고 또 헤어지고, 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또 조우하게 됩니다. 하지만 첫사랑은 이미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됐고, 주인공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목숨을 겁니다.
이런 스토리를 가진 영화가 과연 몇 편이나 될까요?
영화 ‘사랑’의 이야기는 클리셰들의 조합입니다. 70년대 순애보에, 그 시절 유행했던 호스티스 영화들의 변주에, 엔딩에 가서는 셰익스피어의 흉내까지 내고 있지요. 개발되지 않은, 그냥 답습된 인물들만 봐도,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느슨하고 게으릅니다. 후반부의 강도 높은 폭력 장면들의 난무에도 불고하고 지루한 편이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에피소드나 인물들은 모두, 주인공 인호에게 동기부여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런 장르의 공식들을 무작정 따를 뿐, 이 영화만의 개성은 거의 없어요.
익숙한 설정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갖는 원형성을 공유하면서도 영화 특유의 질감을 갖기 위해서는 플롯이나 캐릭터의 개발이 필수적이지요. 하지만 캐릭터만 봐도,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인호는 비슷한 이야기에 숱하게 등장해온, 주먹 꽤나 쓰면서도 순수한 내면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전혀 개발이 되지 않은 인물입니다. 상대역인 미주는 더 심해요. 성폭행을 당한 후, 직업여성으로 전락해 버린 미주의 배경 이야기는 여성들이 처녀성을 강조 받던 구시대의 유물 같아요. 솔직히, 이런 여주인공은 좀 짜증나지 않나요??
미주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볼까요. 미주는 연약하고 보호받아 마땅한 여자들의 스테레오타입의 집합체입니다. 그건 이성애자 남성들이 가질 수 있는 여성성의 판타지일 수도 있고, 반대로 여성 스스로가 그려내는 판타지일 수도 있습니다. 미주는 얻어맞고, 납치당해 강간당하고, 일본으로 가서는 성폭행의 후유증으로 몸을 팔게 되고....... 영화 속의 미주는 작은 충격에도 픽픽 쓰러지는 동화 속 공주 같습니다. 인호는 그런 미주를 보호해야 하는 용감무쌍한 왕자이고요. 이 영화는 성차별적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마초들을 위한 영화처럼 보여요.
영화는 철저히 인호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통에, 영화의 테마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일방적입니다. 일방적인 사랑이 위험하듯이, 결과물로서의 이 영화도 ‘사랑’이라는 주제를 외치기엔 지나치게 한쪽으로 힘을 주고 있어요. 균형이 없는 거죠.
영화의 구성도 그렇습니다. 영화는 인호의 일대기이고, 그의 (넓은 의미에서의) 전기물이기도 하며, 그의 원맨쇼죠. 영화는 비교적 유년기 시절부터 최후의 순간까지의 인호를 러닝 타임 안에 모두 보여주느라 바쁩니다. 주변의 인물이고 뭐고 여유가 없어요. 그러는 통에 주변의 인물들은 제대로 된 성격도 없는 캐리커쳐식의 묘사에, 인호를 자극하는 미끼로 전락할 뿐이죠.
뒷소문에 의하면, 배우 주진모는 인호 역할에 몹시 탐을 냈다고 합니다. 인호라는 캐릭터의 어떤 부분이 주진모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모르겠어요.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런 마초 역할에 일종의 판타지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일반화일까요?
주진모의 연기는 그럭저럭, ‘썩어도 준치’ 수준은 됩니다. 하지만 이 배우의 열렬한 팬이 아니어도 스크린 가득 보이는 아름다운 외모만으로도 영화 감상의 충분한 목적은 되겠지요. 하지만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주진모를 볼 때엔 약간 민망했습니다. 저의 이런 불평에 함께 갔던 일행은 몇 년 전, TV 시리즈 ‘문희’에서 강수연이 여고생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을 환기시켜 주었지만요.
사족.
이 영화의 감독이 ‘친구’를 찍은 감독이더군요. 어쩐지, 영화의 도입부나 엔딩에서 ‘친구’의 흔적이 많이 발견됩니다. 경상도 사투리도 여전하고요. 대사 전달력은 좀 약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포스터의 메인 카피처럼, 질기고도 질긴 ‘인연’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제목부터 고쳐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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