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야행_모리미 도미히코-리뷰

달콤한 쿠키 2017. 8. 29. 05:36


본문 196쪽에 나오는 ‘마경(魔境)’이란 단어는 ‘모리미 도미히코(森見 登美彦)’의 오랜만의 신작, <야행(夜行)>의 세계관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악마들의 세계’라는 뜻이 나오지만 작가는 작중 인물 ‘사에키’의 입을 통해 보다 정확한 뜻을 소개합니다.


사에키는 귀신에 홀린 한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극락으로의 여행을 떠났다고 믿는 스님은 단지 (귀신에 홀린 채 마경에 빠져) 삼나무 꼭대기에 포박된 것이었고, 그런 스님을 발견한 제자들에 의해 구해지지만 극락왕생을 방해했다며 노발대발 화를 내다가 사흘 후에 죽습니다. 그러면서 사에키는 ‘예술가들이란 그런 부류’라고 단정 지어 버립니다.


사에키의 말대로 예술가가 그런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무 꼭대기에 처한 자신의 상황을 스님은 과연 어떻게 여겼을까가 궁금해졌습니다. 귀신에 홀렸든 말든, 나무 꼭대기에 매달렸든 모래밭에 파묻혔든 스님의 믿음처럼 그 상황이야말로 극락은 아니었을까요. 혹시 제자들은 스승을 구한다는 명분 아래, 그 행복을 방해한 훼방꾼들은 아니었을까요.




등장하는 인물들은 학창시절에 영어 학원을 함께 다녔던 동기들입니다. 그들은 일본의 한 지방 축제를 보러 갔다가 일행 중의 ‘하세가와’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을 경험합니다. 그 후로 어느덧 십 년이 흘러 어엿한 사회인이 된 남은 사람들은 그 장소에 다시 모여 십 년째 행방이 모호한 하세가와를 기리며 자신들이 겪었던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런데 각자의 경험담들은 ‘기시다 미치오’라는 동판화 작가와 그의 ‘야행’이라는 제목의 수상스러운 판화작품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총 여섯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미스터리와 호러, SF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우울하고 음산하며 비밀스럽고도 기이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장편소설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각 장들마다 다른 화자가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연작소설에 가깝습니다. 표제와 동일한 제목의 일련의 동판화 작품들을 매개로 한 각자의 이야기는 서로 상관이 없는 듯 이어지다가 맨 마지막 장에 가서야 하나의 그림으로 맞물립니다.


‘하나의 그림으로 맞물려진다’고 말은 했지만 그 그림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정체성의 혼돈, 어긋나는 욕망, 가상의 친구, 인간의 태생적인 외로움 등을 화두로 한 이야기들은 현실보다는 환상에 천착하며 모호한 화법으로 애를 태우다가 혼란스러운 결말로 독자들을 이끕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한데 묶는 마지막 장에 가서도 독자들의 호기심은 충족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독자들의 의문은 한층 더 증폭됩니다. “도대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이러닉하게도 이 작품의 긴 여운은 바로 그런 점에 기인합니다. 모호함은 아귀가 딱 맞지 않는 우리들의 삶과 닮아 있으며 그런 삶을 사는 우리들의 머릿속은 항상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에 대한 질문은 평생 우리를 괴롭힐 테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욕망들은 인간을 한없는 방종과 나락으로 이끌며, 과장되거나 방향을 상실한 그릇된 믿음은 종종 위험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흔히 행복하다고 여기는 상황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 수 있으며, 때때로 남발되는 선의(善意)는 결국은 가부장적인 연민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숱하게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는 대상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만의 기준이 올바른 잣대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타조와 같은 모양새죠.


결국 작가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이성과 틀에 박힌 사고에 어긋나는, 이 환상적이고 기묘한 이야기를 통해 의식의 맹점을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상자에 갇힌 것처럼 자신이 만들어 낸 자신만의 ‘마경’에 빠져 자신의 삶을 사는 것만으로 모자라,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고 타인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고 있는 지도요.


그런 맥락에서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로 사용되는 ‘밤’이라는 소재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다른 주요 소재인 (<야행>이라는 제목의 동판화 작품이 상징하는) ‘마경’처럼 밤은 침묵과 어둠, 귀신의 시간인 동시에 ‘통찰’과 ‘각성’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밤이 되어 빛이 차단됨으로서 오히려 별과 달, 자연의 한숨 같은 것이 비로소 깨어나 우리의 의식을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불야성을 이루는 작금의 밤들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듯 보입니다. 환히 불을 밝혀 빛과 소음의 바다로 내몰린 사람들은 반성과 깨달음의 기회는커녕 숙면과 재충전의 시간도 갖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 거칠고 이기적이며 편협해지기 쉽습니다. 상징적인 마경이 아닌, 진짜 ‘마경’에 빠집니다. 가족과 이웃이 있는 세상이 아닌 악마들, 귀신들의 세계로 발을 내딛습니다. 어쩌면 그 스스로가 무시무시한 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삽니다. 그게 마경이든 실제의 세상이든 그 누구도 정확히 모릅니다. ‘나카이’가 자신의 아내라고 믿는 여자가 생면부지의 여자일 수도 있고, ‘다케다’는 선배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게 아닐 수도 있으며, ‘후지무라’가 어릴 적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친구는 실제로 존재하는 지도, 죽은 줄 알았던 ‘기시다’는 역시 실종됐다고 여겨지는 ‘하세가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 눈 앞의 모든 것이 허상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이 자연계에는 분명히 존재하기도 하고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요.


인간사의 많은 일들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일이 좀처럼 쉬워 보이지도, 그게 가능한 일로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좀 더 너그럽다면, 우리가 더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다면, 우리가 좀 더 우리의 인간성을 지키려 한다면, 우리는 타인을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과 관계에 더욱 충실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호러 소설, 혹은 환상 소설로 소비되기 쉽습니다. 출판사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장기가 골고루 발휘된 이 작품이 여느 다른 독자들에겐 다른 식으로 읽히길 기대해 봅니다. 여러 기능을 갖는 것, 그게 ‘좋은 책’, ‘의미 있는 이야기’의 첫째 조건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