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테레즈 라캥_에밀 졸라-리뷰

달콤한 쿠키 2019. 12. 19. 06:46


거의 고아나 다름없어 고모에게 맡겨진 테레즈는 나중에 병약한 사촌 카미유와 결혼합니다. 그 시절에 사촌과 결혼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었고 오갈 데 없는 테레즈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셈인데, 테레즈는 그 결혼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테레즈는 정신보다 (육체)’의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 욕망에 이끌리고 본능이 앞섰죠. 그런 사람이 나약하고 의존적이며 모친의 과잉보호가 늘 불만이었던 사람을 남편으로서 사랑할 수 없었던 건 능히 짐작이 가능합니다. 미치도록 삶이 불만족스러웠던 테레즈는 어느 날 카미유의 친구 로랑을 알게 되고, 많은 면에서 남편과 정반대인 그에게 강하게 이끌립니다. 두 사람은 결국 불륜에 빠지고 거치적거리는 카미유를 제거하려 합니다.

 

여기까지 쓰고 생각해 보니, 이 작품의 리뷰를 쓰는 게 얼마나 민망한 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자연주의, ‘사실주의같은 단어들을 적는 것도요. 왜냐면 이 작품은 작가인 에밀 졸라만큼이나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을 거쳤고,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며, TV드라마, 영화, 오페라 등으로 수도 없이 각색되었죠. 그리고 무슨 주의니, 무슨 파() 같은 사조(思潮)엔 제가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솔직히 고백하면 오히려 이런,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의 리뷰를 쓰는 게 무척 어렵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감히이런 생각이 먼저 드니까요.

 

그래도 (고전 앞에선 괜히 쫄보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읽어냈으니) 감히 감상을 적자면 ,이 작품은 오랜 세월을 겪었음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강력한 작품입니다. (그러니 고전으로 남았겠죠.) 게다가 흥미로운 건, 제가 좋아하는 장르문학의 요소들을 기꺼이 수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범죄소설(Crime Fiction), 도서추리소설(Reversed Detective Story), 심지어 느와르(Noir)와 호러의 요소들까지요. 이런 대중적인 요소들이 이 작품의 생명력과 깊은 관련이 있지 않나 짐작해 봅니다.

 

 

 

정부와 모의해서 남편이나 아내를 제거하는 일은 실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슬프고 무서운 일이지만 사실이죠. 거의 가십(gossip)에 가까운 이런 일은 작가들에게 흥미 있는 소재였던 것 같습니다. ‘에밀 졸라이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들이 많이 나오니까요.

제임스 케인(James M. Cain)’34년 작품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피에르 보왈로토마 나르스작콤비(Pierre Boileau and Thomas Narcejac)51년 작품  악마같은 여자(Celle Qui N'était Plus)가 그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겁니다.

주인공인 테레즈는 헐리웃의 고전 필름 느와르(Film Noir)들에 등장하는 팜므 파탈(femme fatale)들의 원형입니다. 그리고 네드라 타이어(Nedra Tyre)’가 63, EQMM(the Ellery Queen Mystery Magazine)에 발표한 인상 깊은 단편, 친절한 살인(Killed by Kindness)은 이 작품의 결말을 크게 확대한 작품입니다.

영화에서도 그 예들이 많습니다. 제임스 케인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동명의 영화들이나 브왈로-나르스작 콤비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앙리 조르쥬 클루조(Henri-Georges Cluzot)’55년 영화, 디아볼릭(les Diaboliques), ‘워쇼스키 형제(the Wachorskis, 지금은 자매)’96년 작, 바운드(Bound), 그리고 박찬욱2009년 작 박쥐까지.

 

 

이 작품은 다소 지루한 면도 있습니다. 소재로만 본다면 지독한 멜로드라마가 연상되지만 작가는 충격적인 사건 그 자체보다 두 공모자들이 살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살인자들의 심리, 살인 이후의 총체적인 변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인간의 악, 마음 같은 관념적인 대상을 언어로 풀어내는 것에 작가가 어려움을 느꼈던 모양인지 동의반복이 많은 편이라 카미유의 퇴장 이후엔 읽히는 속도가 더딘 편입니다. 하지만 죄책감에 짓눌린 두 살인자가 서로의 죄를 드러내고 상대를 저주하면서 이끄는 광기 어린 클라이맥스는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테레즈와 로랑의 죄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 분명하겠지만 두 사람이 망자의 환영을 느끼고 보고 의식하는 부분에선 반대로 에드가 앨런 포우(Edgar Allan Poe)’에게서 받은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고양이 프랑수와에게 살인의 죄의식과 죽은 자에 대한 공포를 투사하여 결국 고양이를 죽이는 로랑은 (이 작품보다 25년 먼저 세상에 나온) 포우의 단편,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에 등장하는 의 분신입니다.

 

(포우의 단편을 제외한) 위의 작품들이 테레즈 라캥의 아류라고 하는 이야기는 거의 거론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각 작품들마다 개성과 독창성이 뚜렷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 영향을 받은 건 분명해 보입니다.

에밀 졸라 이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던 작품이 있었겠지만 이 작품이 거의 시초, 혹은 원형이라고 보는 건 아마도 테레즈 라캥이라는 소설이 출판 당시 몰고 왔던 화제성과 작품의 오리지낼러티(originality)가 독보적이기 때문일 겁니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같은 이야기, 같은 테마가 반복되는 걸 보면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서로 비슷한 얘기를 하면서도 다 달라 보이니, 신기하고도 하고요. 그게 예술가들의 가장 중요한 재능이자 솜씨가 아닐까요. 결국 진짜 예술가들이란 아닌 척하면서 그럴 듯한 모방의 천재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족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소한 잡식.

도서 추리소설을 보통, 범인과 범죄가 먼저 등장하고 탐정이 그것을 추적해나간다는, 보통의 추리소설 플롯을 거꾸로 해놓았다고 해서 reversed detective story라고 하는데, Open Mystery, Howcatchem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howcatchemwhodunit의 반대되는 개념에서 만든 표현이겠죠.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