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대로 사촌이 땅을 빼앗기면 기분이 좋을까요?
사촌이 잘 나가는 사람이라면 평소에 은근히 질투가 날 테니 땅까지 사면 그게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사촌이 잘 나가도 저랑 사이가 좋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배가 아플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촌이라면 같이 기뻐해줄 테고, 사이가 좋다는 게 그저 ‘나쁘지 않다’의 수준이라면 배가 아플 수도 있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벌어 모친이 평소에 나와 비교를 일삼던 사촌이 큰 손해를 입으면 쌤통입니다. 하지만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모처럼 집을 샀는데 사기를 당해 그 성실함의 보답이 빚이나 소송으로 돌아왔다면 그 고통을 함께 나누겠지요.
예전에 잠깐 몸 담았던 회사는 완전 고용이 아니었고 대표님이 일을 따내면 직원들이 함께 매달려 해내고 그 이익을 나누는 그런 회사였습니다. 맡은 일을 집에서 해도 되니 꼬박꼬박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고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한다고 해도 괜찮았죠. 반 고용에 반 프리랜서인 특이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같이 일하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쪽팔려서 표현은 안 했어도 전 그 친구에 대해 열등감이 있었어요. 학벌도 좋은데다 학교 선배인 대표님이 그 친구를 편애했으니까요. 아니면 나 혼자 그렇게 믿었던가요. 아무튼 선후배 사이라서 알게 모르게 그 친구에게 좋은 기회가 많이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열등감에 경쟁의식까지 겹쳐서 저를 괴롭혔던 거죠.
그러던 그 친구가 혼자 일을 따서 한동안 그 일에 매달리더니 좋은 성과를 거두고 두둑한 포상까지 거머쥐게 되었죠. 제가 친구로서 동료로서 마냥 반가웠을까요? 물론 겉으로는 축하한다, 좋겠다 했지만 속은 달랐습니다. 창자가 베베 꼬이는 기분이었죠. 열등감에 경쟁의식에 질투에 삼종 셋트였죠. 난 이런 인간 밖에 못되는구나, 이런 자괴감까지.
그런데 그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전직을 선언했습니다. 모든 일을 뒤로 하고 전혀 다른 일을 하겠다는 거였죠. 알고 보니 그 일을 하면서 말도 못할 고생을 했다네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완전히 업계를 떠날 생각을 했을까요. 입으로는 안 됐다, 서운하다 했지만 속도 그랬을까요? 전혀요. 오히려 홀가분하고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이젠 열등감이나 지나친 경쟁의식, 자괴감 같은 걸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아도 되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친구에게 미안한 일이고 스스로도 속 좁은 인간인 것 같아 창피하지만 당시엔 그런 생각과 감정이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했습니다.
한편으론 그런 내가 스스로 부끄럽고 한심했습니다. 나중에는 약간 겁도 나더라고요. 친구의 실패와 고통으로 기뻐하다니, 내가 못된 인간인 걸까요. 나에게 가학적인 성향이 있거나, 혹시 심각한 사이코패스의 증후가 아닐까요.
독일어에 ‘Schaden(s)freude’라는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손실’을 의미하는 단어 ‘shaden’과 기쁨을 의미하는 단어 ‘freude’의 합성어로, 타인의 손실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는 이중적인 심리를 의미하는데, 불행히도 영어엔 이런 명확한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joy of pain’이나 ‘harmful joy'라고 해도 뜻은 통하지만 이는 단어가 아니라 관용적인 표현이지요.
우리나라 말엔 그런 단어가, (다행스럽게도) ‘쌤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표준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어울리는 상황과 그 말을 입밖으로 내뱉을 때의 통쾌함 같은 것들은 많이 익숙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편리한 단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저 감정을 겪는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까요.
저자는 그 주제를 이 책을 통해 비교적 명쾌하게 풀어냅니다.
쌤통 심리는 주로 어떤 경우에, 그리고 왜 일어날까요. 저자에 의하면 한 마디로 타인의 불행에서 우리가 얻는 이득이 있을 때 우리는 쌤통 심리를 느낀다고 합니다. 이런 이득은 실제적인 이득 외에 사회적 비교, 특히 하향 비교를 통해 느끼는 우월감이나 경쟁 상대의 실패를 통한 만족감 같은 감정적인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도 합니다. 라이벌에 대해 깊은 열등감이 있다면 쌤통심리는 더욱 커지겠죠. 그리고 경쟁자의 실패와 몰락이 자업자득일 때, 우리가 느끼는 정의감의 본질엔 쌤통 심리가 있다고도 합니다.
저자는 쌤통 심리가 다른 요소들과 결합될 때의 위험 역시 경고하고 있습니다. (스포츠나 정치 같이) 집단성의 요건(집단 동질감, 애착, 집단정체성 등)을 갖추고 있다면 쌤통 심리는 더욱 노골적이 되며, 거기에 질투라는 감정이 개입된다면 분노와 증오심으로 변질된 쌤통 심리는 희생양을 만들어 극단적인 폭력성을 행하게 됩니다. 저자는 그 예를 ‘홀로코스트’에서 찾고 있습니다. 저자의 경고는 오늘날 대중문화, 미디어에 만연한 쌤통심리를 이용해서 시청률을 올리는 TV프로그램들로 이어집니다. ‘Humilitainment’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이런 경향은 타인을 곤란하게 만들고 굴욕을 안기고 모욕을 줌으로서 시청자들에게 괴상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 합니다.
쌤통 심리를 느끼면서 우리는 그것을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보편적이죠. 남들의 눈에 이기적이고 못된 인간으로 보이는 게 싫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잘못되고 그릇된, 사악한 감정일까요.
저자는 쌤통 심리가, 경우마다 다를 수 있지만, 모두에게 존재하는, 보편적인 거라고 합니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얘기죠.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건 인간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가장 먼저 추구하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기적인 동물이지만 동시에, 동정이나 연민 같은 이타심도 분명하게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선, 아니면 악, 어느 한 쪽만으로는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지 못하며 쌤통 심리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독자들을 안심시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실패나 고통을 쌤통이라고 느낄 때 심한 죄책감을 갖거나 자신의 도덕적인 기준을 굳이 심각하게 의심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다행인 건 저자의 표현대로 ‘해독제’가 있다고 합니다. 최근의 심리학의 경향을 들며 저자는 인간의 마음이 악보다 선에 더 많이 기울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에 악마도 있고 천사도 있지만 천사가 한 명 정도 더 많다는 얘기인데, 그 예로 경쟁의식은 나름 사용하기에 따라 행동과 성과의 좋은 동력이 됩니다. 저자는 쌤통 심리를 긍정적으로, 건설적으로 승화하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디타’의 개념은 쌤통 심리와 반대의 개념인데, ‘타인의 행복을 보고 느끼는 기쁨’을 말합니다. 제 기억과 경험을 더듬다 보면, 타인의 행복에 미소 짓던 모습이 적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완전 천사처럼 살지는 못하겠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잠깐 아프더라도 나중에라도, 그리고 빈말이라도 축하한다 말 한 마디 정도는 해줘야겠습니다.
사족
처음에 언급했던 친구와는 지금 사이가 약간 소원해졌습니다. 사실은 약간 정도가 아니라 연락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요.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안하다 친구야)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제가 먼저 전화를 걸거나 카톡을 보내지는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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